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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독감? 뭐가 무섭다고

영부, 精山 2006. 12. 2. 07:55

'산성 할아버지의 한문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칼칼한 목소리로 연세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열강하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런 것 때문에 내가 그 강좌를 애청하는 것은 아니다.

한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공통점을 나는 그 강좌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다.

예를 들면 木을 설명할 때에도 十八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강좌 하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며칠 전 강좌에는 마음을 닦는다는 사람들에 대해서 따끔한 질타를 하였는데, '마음을 닦기는 뭘 닦아? 각성을 하면 그만이지, 마음은 닦는 게 아냐'라는 말씀이었다.

그 역시 평소의 나와 같은 생각인 지라, 매우 흥미롭게 강좌를 시청하였다.

 닦는다는 표현 자체가 이미 마음이 더럽다는 걸 인정하고 있지 아니한가?

마음이란 것은 더러운 것도 아니며, 깨끗한 것도 아닌데 어찌 닦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동학의 창시자이신 수운선생께서는 修心이 아닌 守心을 하여 正氣하라고 하였다.

닦는 다는 건 열매가 맺히기 전의 과정에서 하는 일이다.

행여 벌레가 먹을까봐, 행여 바람에 꺾일까봐, 부지런히 관찰하고 보살피는 것이 닦는 행위이다.

그러나 열매가 맺혀지면 더 이상 그런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열매가 맺혀지면 그걸 잃어버리지 않도록 간수만 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修心과 守心의 차이다.

이미 어느 정도 마음에 열매가 맺혀지면 바람이 불건, 태양이 내리쬐건, 눈이 오건, 비가 안 오건 그리 안달하지 않는다.

적당한 시기와 장소만 있으면 언제라도 다시 열매가 씨앗으로 변하여 생명을 발아할 수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랴!

열매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일단 열매를 맺은 사람들은 그걸 적당한 시기에 파종을 해야 한다.

그런 행위가 바로 '언행'이다.

따라서 열매를 맺었는지, 아닌 지는 그 사람의 언행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흉한 열매는 흉한 언행으로 드러나고, 길한 열매는 길한 언행으로 나타난다.

죽은 다음에 열매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드러난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조금만 이상한 징후가 있어도 마치 큰 일이나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게 마련이다.

항상 그랬지만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말세병, 혹은 개벽병에 걸린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익산에서 AI고병원성조류독감이 발생한 것을 두고, 전세계를 청소하는 괴질의 발생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과거에도 수많은 헛소리를 하였던 전력이 있는데, 이번에 또 단골메뉴를 들고 나왔다. 그에 못지 않게 우주인들의 메시지를 접한다는 영매들은 지구의 파멸을 막으려면 외계인과 연합해야 한다고 그럴 듯 하게 책까지 냈다.

그러나 설령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무에 그리 대수일까?

그들도 역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한 생물체라면 우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런 법칙에 의존해서 사는 게 아닌가?

그런 법칙을 깨닫기만 하면 그만이지, 굳이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할까?

조류독감이 돌면 어떻고, 안 돌면 어떻다는 말인가? 죽을 사람은 당연히 죽을 것이요, 살 사람은 살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을 뛰어넘은 것이 진정한 깨달음일진대, 자신들의 종교나 교주만  믿고 따라야 한다는 건 무슨 해괴한 망언이란 말인가!

죽이고 살리는 것은 자신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야말로 자연의 현신이며, 창조주 그 자체다.

오직 자신을 제대로 깨닫는 자만이 스스로 영생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헛소리에 현혹 당할 천부동 식구는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