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와 내가 처음 만난 날, 그녀는 내게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6세 때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교회에 다녔으며, 나를 만났을 때에도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나이 어린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전장에서 죽이게 된 것은 여호와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애들한테 이야기를 해주고 있지만, 그 속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자신을 믿지 않는 이교도라고 해서 다윗으로 하여금 맞아 죽도록 할까요?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부처님도 자신을 믿지 않는 이교도들은 죽여버리라고 해야겠군요. 그런 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인류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긴 종교전쟁은 찬양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런 식으로 어린 아이들이 교육을 받는다면 나중에 커서 자신들도 모르게 독선과 배타주의로 흐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종교인보다 기독교인들이 배타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하면 과할까요? 다윗과 골리앗을 수천 년 전의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면 그건 성경을 역사서로 보고 있는 셈이지요. 그들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과 교훈을 안겨주고 있지요."
"네? 지금 여기에 그들이 있다뇨?"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 바로 우리들 마음 속에 그들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다윗은 영적인 사람으로, 골리앗은 육적인 사람으로 서 있습니다. 다윗은 양떼를 치는 목동이었고, 골리앗은 용감한 장군이었습니다. 양떼를 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푸른 초장으로 안내하는 진리의 선구자요, 골리앗은 세상에서 커다란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세상의 영웅을 상징하고 있지요.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무기가 무엇인가요?"
"그건 양치던 막대기와 물매돌이었죠."
"양 치던 막대기는 사람들의 영혼을 안내하던 진리의 십자가요, 물매돌은 오랜 세월 물 속에서 둥글고 반짝 반짝 윤기가 나도록 원만하게 닦여진 다윗의 사랑이었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진리와 사랑으로 무장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건 바로 그와 같은 진리와 사랑의 힘이었다는 걸 상징으로 보여 준 겁니다."
"막대기가 어떻게 진리의 십자가가 되나요?"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탈출할 때에 모세가 광야에서 불뱀을 막대기에 달아 매어 죽인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죠? 그걸 본 사람들은 불뱀의 독으로부터 벗어나 살아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죠? 예수는 그걸 인용하여 '인자도 막대기에 들려야 하리라'고 하였는데, 그게 바로 십자가였거든요. 불뱀은 에덴동산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선악에 물들게 하였던 바로 그 뱀과 동일하지요. 막대기도, 불뱀도, 다윗과 골리앗도 우리 마음 속에 지금 현재 있습니다."
그녀는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다윗과 골리앗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내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나는 언제나 다윗도 되고, 골리앗이 되어 막대기나 물매돌을 가질 수도 잇고, 칼이나 창을 가질 수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같은 분들을 나는 본 일이 없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나와 같이 존재한다.
그들의 영혼과 가르침은 그 어떤 것보다도 커다란 소리가 되어 지금 내 마음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