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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으며

영부, 精山 2006. 12. 18. 10:17

 

그저께 토요일 송년회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푸짐하게 눈이 내렸다.
사라는 좋아라 이리뛰고 저리뛰는 모습이 꼭 토끼를 닮았다.
머리 위에, 어깨 위에, 발 등에 떨어져 금방 녹아버린다.

난 어릴 때부터 비나 눈을 좋아한다.
특히 일부러 비를 맞으려고 우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흠뻑 젖던 기억도 많다.

눈이나 비는 다 같이 물이다.
그러나 눈은 하얀 색을 띠기 때문에 더 결백해 보인다.
그러기 때문에 눈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얗게 파 묻힌 산과 농촌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은 다들 공감했을 것이다.

눈이 내리면 예부터 개들이 좋아한다고 하였다.
개는 12지지 중에서 11번째에 해당하는 戌이다.
12지지 중에서 土에 해당하는 것은 辰戌丑未 네 개다.
봄은 辰3월, 여름은 未6월, 가을은 戌9월, 겨울은 丑12월이다.
그러므로 개는 가을을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겨울을 맞이하는 일을 한다.
천간에서 土를 가리키는 戊에 점(별 주, 혹은 있을 주라고 함) 하나를 찍으면 戌이 되는데, 무나 술이나 다 같이 오행으로 土를 가리키면서 표기도 비슷하니 헛갈리는 경우가 제법 있다.
戊는 戈(창 과)가 옆으로 강하게 삐친 상태(  )인데, 창을 힘차게 휘두르는 형국이다.
창을 휘두르는 건 무력 사용을 의미한다.
이처럼 戊는 토의 덕성인 조화와 중용을 무력을 사용하면서 이룬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
그런데 戌은 戊에 점 하나를 더하였으니, 그 뜻은 무력으로 이루어 놓은 밭에 씨(점)를 하나 집어 넣는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선천주역문명은 무진년을 태세로 하고, 무술일에 출발하였다.
흰눈은 액체를 단단하게 뭉친 것이다.
정기신 3보 중에서 기체는 액체로도 되고, 고체로도 변한다.
고체로 변하는 출발이 바로 얼음인데, 그 상징이 바로 눈이다.
가을에 비록 열매를 거둔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내면의 세계에 갈무리 하는 것은 겨울이다.
그 겨울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눈이다.
눈이 내리면 겨울이 깊어간다.
겨울이 깊어지면 내면도 풍성해진다.
살은 여름에 찌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 찐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눈을 맞아야 한다.
모든 걸 탈색한 하얀 눈!
욕심을 벗어 던질 때에 비로소 차분한 심정으로 6각형으로 된 흰눈을 본다.
6은 1과 더불어 만물의 근원이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붉은 개, 병술년도 차츰 그 자취를 숨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