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하늘과 땅과 인간을 동시에 뜯어고치는 것이 개벽이다. 천지인 삼계는 천부경의 일석삼극(一析三極)의 원리에 따라 동시에 벌어진 것이므로, 결코 따로 분리될 수 없다. 그것을 현무경에서는 심령신(心靈神)으로 표현하였으며, 그것이 한데 모인 곳을 가리켜 심령신대(心靈神臺)라고 하였다. (현무경 적멸장 2절) 심령신대를 잘 살피면 천지인이 어떻게 한 곳으로 모이며, 그것이 어떻게 해서 이상적인 인간,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답을 알게 된다.
둘째, 개벽은 도수(度數)를 통해 진행한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하여도 제멋대로 조화(造化)를 하고, 교화(敎化), 치화(治化)를 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잡신(雜神)이나 사신(邪神 ; 사악한 신)에 지나지 않는다. 전지전능한 신, 공정한 신일 수록 반드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법의 잣대를 제시해야 한다. 인간사회에서도 선악을 가름하는 잣대가 있거늘, 하물며 개벽주의 입장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것을 가리켜 도수라고 한다. 도수에 대한 것은 잠시 후에 다시 거론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일단 생략하기로 한다.
셋째, 개벽은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드나들게 하는 공사다. 이것은 현무경에 밝힌 대로 인체가 곧 심, 령, 신이 함께 드나드는 집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까지의 영가천도에 관한 견해를 달리하는 전기가 될 것이다. 지금도 조상들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린다는 취지 아래,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적지 않은 폐해가 그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개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생활화한다면 그런 것은 전혀 가당치도 않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과거의 천존과 지존문명 시대에는 모든 것을 인간이 아닌 천지를 기준으로 순환하였다. 천지신명과 같은 각종 신은 인간과 함께 한 것이 아니라, 천지에서 인간을 조종하기 일쑤였다. 그런 까닭에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각종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구천을 맴도는 영혼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게 해드리는 천도제(薦度祭)를 드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신들의 경계가 막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천지개벽을 하여 삼계가 단일화되면 모든 경계와 장벽이 허물어지게 되고,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구천을 맴돌던 영혼들이 최종적으로 안착할 곳은 인간의 마음이다. 아직도 하늘 어딘가에 있는 신명계나 영계로 영혼들을 천도하려고 한다면 결국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개벽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3. 도수(度數)
개벽에서 특히 유의할 것은 개벽주가 ‘도수’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도수는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진리라고 하지 않고, 도수라고 표현한 까닭은 진리는 너무 흔한 용어가 되어 버렸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 자칭 도인(道人)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도의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도대체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도(道)와 도수(度數)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도는 무형의 하늘을 가리키고, 도수는 도를 활용하는 인간의 방편이다. 하늘에서는 도라고 하며, 땅에서는 덕이라고 하며, 인간이 그것을 깨달으면 도수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선천의 천지가 주관하던 시절에는 도수(度數)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 그것은 후천 인존문명이 시작되어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천에는 주권이 인간이 아닌 천지부모에게 있었으므로 개벽주도 인간의 몸으로 올 수 없었다. 그러나 인존문명이 시작하는 시기가 도래하므로 어쩔 수 없이 개벽주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화현하신 것이다. 이른바, 성경에서 오리라고 한 ‘재림주’요, 불경에서 다시 오리라고 한 미륵불이요, 정도령이 바로 개벽주였다.
지금이라도 양식이 있는 분들이라면 선천의 종교 중에서 어떤 것이 개벽주가 행한 것과 같은 도수를 사용하였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철통같은 계명이나 계율로써 인간을 옭아매어 놓지 않았던가?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시기하지 말라, 우상숭배 하지 말라 등등,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기처적인 덕목들로 가르쳐 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 속에 무슨 깨달음이 있고, 우주의 법칙을 알 수 있는 도수가 있단 말인가?
도수는 원방각 중에서 본래 각(角)에 해당한다. 원도(圓度)나 용어보다 각도(角度)라는 용어가 더 친숙하지 아니한가? 도수는 천문40자(천간 10자, 지지 12자, 팔괘 8자, 수 10자)로 이루어진다. 하늘에는 원형이정이라는 천도지상(天道之常)이 있고, 그걸 상징하는 도구가 바로 천문40자다. 인류가 고안해 낸 도구 중에서 천문40자를 능가할 만한 것은 없다. 그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 바로 개벽주가 친필로 성편한 현무경이다. 현무경을 보면 ·(점) ㅣ(종) ㅡ(횡) 원○ 방□ 각△으로 영부를 그려 놓았다. 이 여섯 개의 부호는 모든 깨달음의 근원이다. 점, 종, 횡은 평면이요, 원방각은 입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런 6개의 부호를 문자화 한 것이 바로 천문 40자다. 구체적인 예를 들 것 같으면, 하늘은 둥근 원(圓)이요, 땅은 방(方)이라고만 하는 것 보다, 원은 360도요, 방도 360도이지만, 하늘은 둥글기 때문에 10 × 36이요, 땅은 사방이 있기 때문에 4 × 90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원과 방이라고 하는 것은 도(道)이고, 10 × 36이나 4 × 90이라고 한 것은 도수(度數)다. 10 × 36은 10 × 6 × 6이다. 이것은 6이 스스로 변화하여 10무극과 조화한 상태를 가리키는데, 천1, 지2, 인3이 합한 자성(自性)을 의미하므로 결국 무극을 자성에서 벌어지게 하는 곳이 하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렇게 하늘의 개념을 아는 것과, 그냥 하늘에는 도가 있고,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같은 360이라고 하여도 4 × 90은 4 × 45 × 2다. 4는 4방이나 4계절을 가리키고, 45는 10을 제외한 1에서 9까지의 합이고, 2는 음양이다. 따라서 4 × 90은 공(空)이 없는 9색이 사방에서 음양으로 구변(九變), 구복(九復)하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냥 땅이라고 하는 것과 이런 식으로 땅을 이해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지 아니한가? 이것이 바로 도와 도수의 차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