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꽃을 담는 그릇이다. 꽃은 만물의 생명체를 상징한다. 개벽주는 흰 병의 입구를 양지에 글을 써서 권축을 지어 막아 놓았는데, 나중에 그걸 풀어서 보니 ‘길화개길실 吉花開吉實 흉화개흉실 凶花開凶實 (좋은 꽃은 좋은 열매를 맺고, 흉한 꽃은 흉한 열매를 맺는다)’이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병은 선악, 길흉의 각종 영혼의 열매를 꽃피우고 심판하기 위한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선한 사람은 빨리 물을 공급받아서 선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악도 역시 이제는 열매를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기에 천하에 수기(水氣)를 공급하려고 한 것이다.
천지성공시대
이때는 천지성공시대라. 西神이 명(命)을 맡아서 만유(萬有)를 지배하여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혹 말라서 떨어지기도 하고, 혹 성숙하기도 함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맺어 그 수(壽)가 길이 창성할 것이요, 거짓된 자는 말려 떨어져 길이 멸망할지라. 그러므로 혹 신위(神威 : 신의 위엄)를 떨쳐 불의(不義)를 숙청(肅淸)하며, 혹 인애(仁愛)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삶을 구하는 자와 복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 - 대순전경 5장 15절
천하에 수기(水氣)를 돌림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천하에 수기가 말랐으니 수기를 돌리리라‘ 하시고 뒷산 피난동(避難洞) 안씨(安氏) 재실(齋室)에 가사 그 앞 우물을 댓가지로 한 번 저으시고 가라사대 ’음양이 고르지 못하니 재실에 가서 연고(緣故)를 물어오라‘ 내성(乃成)이 대답하고 들어가서 물으니 사흘 전에 재직(齋直)이는 죽고 그 아내만 있거늘 돌아와서 아뢴대 가라사대 ’다시 행랑(行廊 : 복도에 딸린 방)에 가 보라. 딴 기운이 고이고 있도다.‘ 내성이 행랑에 들어가 보니 봇짐장수 남녀 두 사람이 들어 있거늘 돌아와서 아뢴대 이에 재실 대청(大廳)에 오르사,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만수(萬修)를 크게 부르게 하시며 가라사대 ’이 가운데 수운가사(水雲歌詞)를 가진 자가 있으니 가져오라‘ 과연 한 사람이 가사를 내어올리고 물러가거늘 그 책 중간을 펴드시고 한 절을 읽으시니 하였으되 ’<시운(詩云) 벌가벌가(伐柯伐柯)여 기측불원(其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지만 이는 도시(都是) 사람이요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목전지사(目前之事) 쉽게 알고 심량(深量) 없이 하다가서 말래지사(末來之事) 같잖으면 그 아니 내 한(恨)인가>‘라 하니라 처음에 가는 소리로 한 번 읽으시니 맑은 날에 문득 뇌성이 일어나거늘, 크게 읽으시니 뇌성이 대포소리와 같이 일어나서 천지진동하며 또 지진이 일어나서 여러 사람이 정신을 잃고 엎드러지거늘 내성을 명하사 각기 일으키니라. - 대순전경 4장 88절
천하에 수기가 말랐다고 한 것은 인간의 영혼에 진리의 샘이 메말랐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선천의 물질문명에서는 도수도 없었고, 용담도도 없었으니 무슨 수로 영혼의 열매를 맺는단 말인가? 그것은 천지인 삼계가 개벽을 하지 못한 결과다. 병에 물을 부어넣은 것은 이처럼 메마른 천하에 수기를 돌리려는 상징이다. 여기서 피난동은 수기가 말라 천하에 난리가 났으므로 뒷산으로 피난해야 한다는 말이다. 앞산은 선천의 동산이요, 뒷산은 후천의 동산이다. 선천의 동산은 자축, 인묘, 진사로 양이 진주(進駐)해 있었고, 후천의 동산은 오미, 신유, 술해로 음이 들어온다. 안씨 재실은 후천은 음을 기준으로 하므로 남성이 아닌 여성을 가리키는 安씨가 재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댓가지로 물을 저은 것은 절도(節度)의 상징인 대나무로 진리의 도수를 잰다는 뜻이다. 대나무는 붓을 상징한다. 안씨 재실이므로 안내성(安乃成)에게 가서 사정을 알아보라고 한 것이다. 안내성은 ‘편안함을 이룬다‘는 뜻이 있으니 이는 곧 후천의 지천태를 암시한다. 3일 전에 재직이가 죽고 아내만 홀로 있다고 하였는데, 3일은 곧 천지인 3변을 하는 과정을 암시한다. 과부가 된 것은 선천의 양, 즉 남편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행랑에 봇짐장수 남녀가 있음은 새로운 음양의 조화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그제서야 대청에 올라가서 서방을 향해 만수를 부르게 하였다. 대청(大廳)은 말 그대로 ’큰 마루, 큰 집, 관청‘을 가리키는 것인데, ’크게 들었다‘는 大聽과도 상통한다. 봇짐장수는 선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도인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후천이 오면 그 사람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서방 하늘을 바라보고 소리를 치게 한 것은 서방에 있는 만수(萬修)를 불러오게 하려 함이니, 만수는 28수 중의 자성(觜星)을 지키는 선관(仙官)이다. 자성은 천문으로 신유일, 신묘일에 운행하고, 신유, 신묘는 다 같이 오행으로 서방 금이다. 즉, 서방에 있던 금(金)을 동방으로 이동시켜야 비로소 금극목(金克木)이 금극생목(金極生木)으로 합덕을 이루는 개벽을 하기 때문이다. 수운가사를 가져오라고 한 것은 천하게 수운, 즉 수기를 돌리게 하려 함이니 서방에 있던 오미 1음, 신유 2음, 술해 3음이 동남방으로 와야만 비로소 동학이 완성되어 천하에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용담도의 서북방 5진뢰에서 중앙으로 1, 6수가 흘러넘치면 동남 7손방으로 생명수가 샘이 솟게 되니 천하에 수기가 돌게 된다. 7손풍이 있는 곳으로 유(酉)가 들어가므로 동방에 있는 목(木)을 벌가벌가 즉, 금도끼로 쳐내어 비로소 천하의 동량지재(棟樑之材)가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는 말씀이다. 맑은 하늘에 뇌성이 일어난 것은 용담도의 5진뢰가 1, 6 중궁을 거쳐 7손풍으로 통하니 천지에 뇌풍상박(雷風相搏)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천지에 수기가 돌때에는 만국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고도 통어(通語)하게 되나니 수기가 돌 때에는 와지끈 소리가 나리라. - 대순전경 3장 178절
이걸 문자 그대로 믿게 되면, 마치 각국의 모든 언어가 다 사라지고 한 가지(한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언어로만 통용될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뜻은 1, 6수가 중앙으로 들어가 사해에 흘러넘치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다 통하게 된다는 말이지, 결코 각국의 언어가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이밖에도 수기에 관한 대순전경의 기록이 많이 있는데, 적절한 시기에 소개할 것이다.
흰 병은 이처럼 동남방으로 서방에 있던 신금(申金)과 유금(酉金)이 들어간 상태를 비유한다. 거기에 하얀 양지(洋紙)라고 한 것은 더욱 서방의 금이 동방으로 이동한 것을 확실하게 일러주고 있으며, 병의 입을 막은 것은 기유 정월 설날부터는 더 이상 선천의 기운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이다. 대신 현무경을 펼쳐 이상적인 지상선경을 세울 것을 암시하는 천지공사의 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