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耳) : 二
귀를 2라고 한 것은 귀의 기능이 정적(靜的)이기 때문이다. 눈은 광채를 발하면서 구석구석을 밝히기 위해 여러 곳을 다녀야 한다면, 귀는 동시에 여러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히 정적인 상태를 좋아하게 마련이다. 눈은 번화한 걸 좋아하지만, 귀는 고요한 걸 좋아한다. 그러기 때문에 귀에다가 소음을 계속해서 들려준다면 얼마 못가서 정신과 몸에 이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정적인 것은 어둡고 차갑다. 어둠은 차가움이고, 차가움은 물의 속성이다. 이목구비는 모두 물이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귀처럼 항상 물이 들어 있는 기관은 없다. ‘고추 먹고 맴맴’을 여러 번 하면 가만히 서 있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운 것은 귓속에 들어 있는 물이 계속 돌기 때문이다. 물은 수평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바다나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 지는 까닭은 물은 수평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겨울의 속성과 너무도 닮았다고 할 수 있으니, 추운 겨울에는 모든 생물들이 땅 속으로 들어가 높고 낮은 것이 없어진다. 그러기 때문에 귀로 사물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면 만물을 수평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수평적인 시각이란 것은 사물을 한 면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양면으로 본다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균형과 조화를 도모할 수 있다. 또한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정화작용을 하는 것처럼, 귀로 사람의 말씀이나 사물의 소리를 잘 듣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다. 귀는 음의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매우 깊은 동굴처럼 되어 있으며, 차가운 걸 제일 싫어한다.
코(鼻)와 입(口) : 三과 四
귀는 상하로 벌어졌는데, 그 이유는 귀의 역할은 좌우와 수평을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눈은 좌우로 벌어졌는데, 그 이유는 눈의 역할이 수직과 상하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귀는 무형의 소리를 듣고, 눈은 유형의 색을 보는 일을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귀는 시간의 변화를 듣는 것이요, 눈은 공간의 변화를 보는 것이다. 코는 상하로 벌어지고, 입은 좌우로 벌어졌는데, 그것은 눈과 귀와 일맥이 상통한다. 형태로만 본다면 상하로 벌어진 귀와 코가 한 짝이며, 좌우로 벌어진 눈과 입이 한 짝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귀와 코는 다 같이 홀수이며, 눈과 입은 짝수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1, 2, 3, 4 중에서 코는 3이요, 입은 4라고 한다. 또 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2로 상징되는 귀는 하늘의 소리를 듣고, 1로 상징되는 눈은 땅의 색을 본다고 한다면, 하늘의 기운인 공기를 먹는 것이 코이기에 양수인 3을 코라고 한다. 땅의 기운인 음식물을 먹는 곳은 입이므로 음수인 4라고 할 수밖에 없다. 즉, 귀와 눈이 각기 천지에 있는 형이상(形而上)에 속하는 음색을 관장한다면, 코와 입은 천지에 있는 형이하(形而下)에 속하는 공기와 음식물을 관장한다.
눈과 귀와 코는 구멍이 두개씩 있지만, 입은 하나 밖에 없는 것은 무슨 이치일까? 그것은 입이 四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一, 二, 三의 형상을 보면 수량이 벌어져 늘어나는 모습인데, 四에서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고, 八방의 기운을 하나의 틀(□)속으로 모아 놓은 모습이다. 즉, 4는 天一, 地二, 人三으로 벌어진 천지인 3계의 만물을 하나로 모아 놓은 상태이기에 입도 하나만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입도 두개로 구성되었는데, 치아와 혀가 바로 그것이다. 다만 눈과 귀, 코의 두개의 기관들은 모두 밖으로 드러난 것에 비해, 입은 속으로 감추어져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것은 四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입은 모든 것을 안으로 수렴(收斂)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눈과 귀는 비록 두개라고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반해, 코는 두개의 구멍이 한데 붙어 있는 이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코와 입은 천지 중에서도 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목구비는 머리통에 붙어 있으니 다 같은 하늘의 사상을 상징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천지로 구분하게 되는데, 눈과 귀는 하늘을 가리키고, 코와 입은 땅을 가리킨다. 그것은 땅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심장과 폐는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에 가슴에 있으며, 간과 신장은 복부에 있게 된 것이다. 하늘은 무형이기 때문에 형체가 서로 분리될 수밖에 없으므로 귀와 눈은 각기 멀리 떨어져 있게 된 것이요, 땅은 허공의 기운들이 서로 하나로 뭉친 형체로 드러나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같이 붙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 개의 코에 두 구멍이 같이 붙어 있고, 한 개의 입에 치아와 혀가 같이 붙어 있게 되었다.
코를 숫자로 3이라고 하며, 입을 4라고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코는 그 모양이 밖으로 크게 돌출되었으니 그것은 양의 속성이 많기 때문이다. 귀도 역시 겉으로 크게 돌출된 것과 같은 이치다. 눈과 입이 귀와 코에 비해 튀어나온 부위가 적은 것은 그들이 음에 속한다는 걸 말해준다. 3은 1 + 2다. 이는 곧 코는 음양의 합일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물론 입도 음양의 합일체이지만 4는 2 + 2다. 같은 음양의 합일체라고 하여도 코는 양을 상징하며, 입은 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숫자도 다르게 된 것이다. 즉 양에 속하는 1은 3변을 하기 때문에 1 × 3 = 3이 되고, 음에 속하는 2는 2변을 하기 때문에 2 × 2 = 4가 된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양은 1 × 3 × 3 = 9가 되어 9궁으로 발전하고, 음은 2 × 2 × 2 = 8이 되어 8괘로 발전할 발판이다. 구체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코로 들락거리는 공기는 9멍으로 통하고,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은 인체의 8방이나 8등신(8等身)으로 통한다. 8등신은 인체에서 머리통의 크기보다 몸통이 8배가 크다는 말인데, 그것은 무형의 하늘이 형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8방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땅의 8방은 하늘의 형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9궁은 무형의 공기가 드나드는 곳이므로 시간의 변화상을 의미하고, 8방은 유형의 형체가 자리한 곳이므로 공간의 변화상을 의미한다. 3이라는 숫자는 본래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을 가리키는 3신이다. 신은 가만히 있질 않고, 항상 변화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코에서는 항상 삼신(三神)의 기운인 공기가 출입을 한다. 이에 비해서 입은 잘 움직이지 않는 편인데 그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은 사방(四方)에 자리를 잡고서 정해진 범주를 잘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코는 천지인 속에 충만한 3신의 기운이 출입하는 곳이요, 입은 사방에 있는 사물(四物)이 들어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