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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홀수, 짝수

영부, 精山 2007. 1. 17. 07:37

 

쉬어 가는 곳  

 

                                 십일조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에는 십일조에 관한 것이 있다. 수입의 1/10을 꼬박꼬박 성금으로 내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하나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개도 안 물어가는 돈을 받겠습니까?“ 하면서 웃어넘긴다. 그러나 개중에는 심각하게 질문하는 이도 있다.  

십일조는 본래 한 해의 농사를 수확할 때에 맏물은 하나님 것이라고 하여 거룩하게 성별(聖聖別別)하는 의식을 가리킨다. 숫자로 말한다면 1, 2, 3, 4, 5, 6, 7, 8, 9의 유형을 상징하는 아홉 개의 숫자가 허공을 바탕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9, 19 29 … 로 변화가 끝날 때에는 반드시 10, 20, 30 … 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9에서 10으로 돌아가서 다시 11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데, 9 + 1 = 10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때의 1이 바로 십일조다. 이것을 다른 말로 천원수(天元數)라고도 한다. 바둑판은 본래 361점으로 되어 있는데, 중심의 천원점 1을 제하여 보통 360점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 때문이다. 이처럼 십일조나 천원수 1은 1에서 9에 이르는 색(色)도 아니요, 공(空)도 아닌 수이므로 묘수(妙數)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를 불교 용어로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는 것은, 진공묘유를 몸으로 체득하지 않으면 신성한 하나님의 예물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부족하거나 아쉬울 것이 없다. 있다면 오직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온전한 인간’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짜 십일조의 정체는 바로 예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선언할 수 있는 진리의 화신(化身)! 그가 바로 하나님이 바라는 온전한 십일조다. 누구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다면 그가 바로 예수요, 하나님이 바라는 십일조다. 

              

              

 

 

 

                                  홀수와 짝수 

 

수에는 홀수와 짝수가 있다. 홀수는 2로 나누어지지 않지만, 짝수는 2로 나누어진다. 2로 나누어진다는 말은 곧 ‘상대성(相對性)’을 의미한다. 상대성을 ‘음양’이라고도 한다. 어느 수에 2를 곱한다는 말은 그 수에 들어 있는 음양을 더욱 세밀하게 분석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어느 수를 2로 나눈다는 말은 그 수에 들어 있는 음양을 더욱 통째로 단순화하여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의식의 단순화는 사물의 근원으로 회귀한다는 뜻이며, 의식의 치밀함은 숫자를 세밀하게 분석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수를 곱하거나 나눌 때에는 이와 같은 개념을 지녀야 한다.  

예를 들면, 7이 비록 홀수이지만 7 × 2 = 14로 계산을 하면 짝수가 된다. 이때의 14는 7성이 음양으로 드러난 상태다. 7은 본래 어둠을 밝히는 하늘의 별을 가리킨다. 오행학에서도 7은 양화(陽火)라고 하여 밝은 불을 상징한다. 14는 ‘10속의 4’다. 다시 말하자면 7이 음양으로 벌어지면 10속에 들어 있는 4방으로 된다는 말이다. 이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인체의 7규(눈, 귀, 코, 입의 구멍을 모두 합한 7수, 얼굴을 가리켜 7성판이라고도 함)로 음양의 이치를 깨달으면 10구멍을 통해 출입하는 4상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보다 쉬울 것이다. 나눗셈은 이와 반대로 보면 된다. 실례를 들어보자. 14 ÷ 2 = 7는 10구멍으로 드나드는 4상의 이치는 7규가 주인공이라는 식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다시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같은 홀수 7이라고 하여도 7 × 3은 짝수가 아닌 홀수 21로 된다. 홀수는 상대가 없다. 상대가 없다는 말은 곧 ‘중심’이라는 의미다. 짝수가 4방, 8방의 방위나 형상을 가리킨다면, 홀수는 그 중심에 들어 있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7 × 2 = 14가 ‘10속의 4방’이라는 방위(형상)를 가리킨다면, 7 × 3 = 21은 ‘20의 중심’을 가리킨다. 따라서 21은 겉으로 드러나는 7성의 빛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에서 발산하는 깨달음의 빛이다. 이런 것은 모든 숫자가 마찬가지다. 자세한 것은 다시 언급할 것이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홀수와 짝수의 차이에 대한 개요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 홀수는 태극을 나타내고, 짝수는 음양을 나타낸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1은 태극이요, 2는 음양인데, 모든 수의 기본은 1과 2다. 물론 0이 있지만 그것은 무형이므로 일단 유형의 세계에서는 예외로 치도록 하자. 1은 무극의 중심인 태극(하늘)이 드러난 것이요, 2는 무극의 음양인 천지가 드러난 것이다. 3은 천지의 중심에 들어 있는 태극(1)인데 이를 가리켜 인간이라 한다. 4는 천지 속에 있던 음양(2)이 드러난 것이다. 5는 4방의 중심에 있는 태극이요, 6은 그 태극에 있는 음양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반복하여 7, 8, 9 … 로 이어지는 것이 숫자의 나열이다. 이처럼 모든 수는 홀짝의 연속이며, 이는 곧 태극과 음양의 반복이다.  

 

둘째 : 홀수는 동적(動的)이요, 짝수는 정적(靜的)이다. 동은 움직이는 것이며, 정은 고요한 것이다. 따라서 홀수는 변화의 주체인 시간을 형성하고, 짝수는 변화의 바탕인 공간을 형성한다. 1은 0이라는 공간에서 움직이는 변화의 주체이고, 2음양을 터전으로 해서 변화하는 주체가 3인데 이를 가리켜 3신이라고 한다. 4방의 공간 속에서 변화하는 주체가 5인데 이를 가리켜 5행이라고 한다. 이처럼 홀수는 시간의 주체이고, 짝수는 공간의 주체다. 

 

셋째 : 홀수는 양이기에 밝음(明)을 가리키고, 짝수는 음이기에 어둠(暗)을 가리킨다. 빛을 낸다는 것은 공간 속에 있던 무엇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상태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가리켜 양이라고 하며, 다시 그 모습을 감추는 것을 음이라고 한다. 1은 0속에 있던 빛이며, 3은 2속에 있던 빛이고, 5는 4속에 있던 빛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양수는 음속에 있던 모습을 빛으로 드러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