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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리치

영부, 精山 2007. 1. 25. 06:46

10. 3변(三變)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무경은 삼극의 변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칫,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도대체 3극의 변화는 우리네 인생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 것인가? 왜 우리는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앞에서 개벽에 대한 기록을 인용하였는데, 다시 한 번 그것을 상기해보자. <서양사람 이마두(마테오릿치)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 : 오래 된 낡은 관습)를 고치고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하늘과 땅의 경계(境界)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서로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내려 사람에게 알음 귀를 열어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묘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현대의 문명이라.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 : 잔악하고 포악함)를 길러내어 천지를 흔들어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써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를 어기는 지라. 이에 이마두는 모든 신성(神聖 : 신선과 성인)과 불타(佛陀)와 보살(菩薩)들로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 : 겁보와 재앙)을 구천(九天)에 하소연 하므로> 도솔천에 있던 개벽주가 직접 사람의 몸으로 조선에 내려와서 천지개벽을 단행하였고, 그 결과로 현무경을 남겼다고 하였다.  

이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대의 문명은 지하신이 천상에 올라가 기묘한 법을 전수 받아 인간들에게 알려준 결과라고 하였다. 하지만 물질과 사리에 정통하였을 따름이기에 인간들은 교만하여지고, 전보다 더한 죄악을 행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것은 곧 천지인 삼계의 혼란을 가져오고, 천도와 인사가 어그러지며, 신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양상으로 변했다. 비록 물질문명은 진보되었지만, 삼계가 문란하여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진멸지경(殄滅之境)에 처하게 되자, 이마두가 제불보살들과 더불어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해볼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받아들여, 직접 개벽주가 지상에 내려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잠간, 이마두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마두는 이탈리아의 마체라타시의 시장을 지낸 요한의 아들로 태어나, 신부가 되어 동서양의 문물교류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당시의 청나라에 들어가 ‘천주 = 상제’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동양의 제사문화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전통적인 미풍양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바티칸에 제사문화를 천주교에서 받아들일 것을 간원하였으나 묵살되고 만다. 만약 그의 청이 받아들여졌다면 동양과 서양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화적인 접근을 이룰 수 있었으리라. 그는 살아 있을 적에 서양의 발달한 과학문명을 동양에 소개하기도 하였으며, 동양의 문화를 번역하여 서양에 소개하는 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혁혁한 업적을 쌓았다. 그의 꿈은 모든 인류가 한 하나님을 모시고 동서양이 통일되어 한 가족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꿈은 그가 육신을 벗어버린 신명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진멸지경에 이른 인류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직접 개벽주가 인신으로 탄강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개벽주라고 하여도 이처럼 인류를 사랑하는 일심(一心)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신명계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벽주가 인신으로 탄강하기 전에 계셨다는 도솔천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그것이 바로 천지인 3계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부득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신명(神明)은 우리말에 ‘천지신명’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천지를 주관하는 신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국어사전에서는 신명을 가리켜 ‘흥겨운 신과 멋’이라고 하여, 영적인 존재나 신적인 존재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기술하였다. 흔히 ‘신명이 난다’고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이 죽은 후에도 신명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런 건 그냥 살아 있는 동안에 느끼는 감정일 뿐이라고 해야할까?  

이에 대해서 개벽주는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로대 천지신명들이 모여들어 법사(法師)가 아니면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 하므로 괴롭기는 한량없으나 어찌 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대순전경 4장 167절)” 라는 말씀을 했다고 한다. 또한 “이때는 신명시대라. 삼가 죄를 짓지 말라. 새 기운이 돌때에 신명들이 불 칼을 휘두르며 죄지은 것을 내어 놓으라 할 때에는 정신을 놓으리라 (대순전경 6장 57절)”, “이 세상에 조선과 같이 신명대접을 잘 하는 곳이 없으므로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각기 소원을 따라 꺼릴 것 없이 공궤(供饋 : 먹여 살림)하니리 도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천하사(天下事)만 생각하게 되리라.(대순전경 5장 38절), ”옛적에는 동서양 교통이 없었으므로 신명도 또한 서로 남나들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기차와 윤선으로 수출입하는 화물의 표호를 따라서 서로 통하여 다니므로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건너보내어 역사를 시키려 하노니 객주를 얻어서 길을 틔워야 할지라.(대순전경 4장 3절)“ 는 여러 기록에서 보는 것처럼 분명히 육신이 없는 신명의 존재를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