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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화공부 2

영부, 精山 2007. 2. 26. 05:18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종시(事有終始)를 한 말로 압축하면 ‘행동(行動)’이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그것은 이미 本에서 末로 가 버렸다.

 

행동이 있기 전에 뜻이 있었다. 뜻은 번개처럼 나온다. 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을 먼저 세워야 길이 열린다.

 

도의 시작과 끝을 이루는 게 뜻이다. 도가 떠오르는 순간에 벌써 시종은 없어진다. 일은 본래 시(始)에서 종(終)으로 간다.

 

 이것을 질서라고 하는데, 먼저 할 것과 나중할 것을 아는 게 질서. 거꾸로 하면 일이 꼬인다. 그러므로 말이 앞서 나가면 성사가 안 되게 마련이다.

 

 선(禪)이란 것은 본에서 말로 가는 걸 드러내는 것이다. 사유종시는 이루어진 걸 확인해 나가는 절차를 말한다.

 

 말을 하는 목적은 이치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같은 마음을 쓰는데 왜 천 사람이 다 다를까?

 

 그것이 바로 이치다. 논법 상 논리가 정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순서가 틀리기에 일이 깨진다.

 

 논리는 교리(敎理)다. 교리와 선법은 둘 다 필요하다. 선법은 언어도단이기 때문에 논리가 필요 없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진 후에는 논리가 필요하다. 몸에 비유를 한다면 좌수(左手)는 체요, 우수(右手)는 용이다.

 

 그러니까 좌수가 선이요, 우수가 교리를 가리킨다. 우수는 좌수를 몰라야 한다. 우수가 좌수가 하는 일을 다 안다면 일이 안 된다.

 

똑 같으면 일을 안 해준다. 너나 나나 똑 같다면 굳이 왜 도와 주나? 참으로 일을 잘 하는 자는 말이 앞서지 않는다. 그런 자는 시비나 걸지 일을 못한다.

 

 師首丈(스승의 머리란 뜻. 후천을 살리는 머리, 증산의 用法을 열었으니 증산보다 더 훌륭하다.

 

그래서 대두목이라고 한다. 頭目은 천안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속도 알아야 하고, 중생의 속도 다 알아야 함.)이 법방을 열었다.

 

 대두목이 법방을 열어주리라고 했으므로, 법방을 열어 준 사수장을 대두목이라고 하는 건 당연하다.

 

 천하의 문은 천지인신, 즉 천문, 지문, 인문, 신문의 네 개가 있다. 그중에서 대두목은 그 중에서 한 개만 연다.

 

 서전서문은 본래 대두목으로 오시는 분을 위한 글이라고 하였다. 거기에 이르기를 ‘총약간만언(總若干萬言)’이라고 하였으니 대두목은 선을 열었나? 교리를 열었나?

 

 萬言이니 교리가 아닌가?

 사람들은 다 자신을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신이 짐승인 줄 알면 사람이 되려는 마음 문이 열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람이 못 된다.

 

 제일 무서운 병이 짐승인 줄 모르고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자기를 모르면 남이 뭐라고 할 적에 감정부터 발생한다. 개에게 돌을 던지면 개는 돌멩이를 문다. 그래도 개는 사람으로 환생할 소질이 가장 크다. 사람과 가까이 하기 때문에, 사람의 짓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개가 하는 짓이 이 모양이다. 그러나 호랑이에게 돌을 던지면, 돌은 쳐다보지도 않고 사람을 문다.

 

 호랑이는 돌이 날아온 방향을 찾아 돌 던진 주인을 알아낸다. 하지만 호랑이나 사자 보다 더 한 것이 사람이 아닌가?

 

 사람이 사람의 영대를 가졌을 적에 禪자리를 본다.

 

 여러분들이 붓을 들고 한 것이 마음자리를 본 것. 붓의 털끝으로 나타난 대나무의 기운을 본다.

 

정중지정(靜中之靜)으로 간 것이 符다.

 

 여러분이 오늘 하루 종일, 앉은 자리에서 6부를 한다는 게 기적이 아닌가? 그것은 정신집중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번개는 번쩍 하는 순간에 지구를 7.5바퀴 돈다고 하는 것처럼, 여러분이 부 치는 것은 번개보다 더 시간을 신속하게 한다.

 

 몇 천 년 간 누적된 업장을 한꺼번에 소멸시키고 있으니 그 얼마나 신속하며 강력한가?

 

 허접스런 업장은 전부 소멸되지만, 참 나는 번개를 아무리 쳐도 깨지지 않는다. 왜냐

하면 맞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중생을 성인으로 만드는 소리가 ‘작지부지성의웅약일음시생(作之不止聖醫雄藥一陰始生 : 성스런 의술과 약이 그치지 않고 나오는 것은 1음이 나오는 후천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지옥의 왕을 죽이는 소리다. 지옥의 왕이 죽어서 없는데 어찌 졸개들이 활개를 친단 말인가? 그러므로 모두가 성인이 되는 것이 바로 영부다.

 

 그러나 오늘날의 증산교단의 교직자들은 축첩(蓄妾)을 하여 세상과 신명계에 혼란을 주고 있다.

 

세상인들이 증산 얘기만 해도 고개를 흔들게 만들었다. 이런 악업을 저지르면 광찬이 판별한 ‘천륜을 끊고 조상을 박대하는 자, 혈통줄을 흐리게 만든 자’ 즉 죽을 자에 해당한다.

 

 증산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단의 간부들에게 몸을 바치는 행위가 바로 그런 죄에 해당한다.

 

 남편이 바로 조상의 뜻을 이어 받은 자이므로 남편을 어긴 자가 천륜을 어긴 자다. 그런 대죄를 지은 자들은 신명이 용서 안 한다.

 

감히 증산을 업고서 증산교인들이 만행을 저지른다. 하느님이 살려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땅과 신명도 용서 할 방법이 없다.

 

 오늘 쓴 글자 중에서 제일 먼저 쓴 글자는? 익자삼우의 益과 손자삼우의 損이다. 그것은 후천에 손익계산을 분명히 한다는 의미다.

 

여러분이 이승에 오기 전에는 수화풍토였다. 죽으면 수화풍은 다 가버리고, 남는 건 토다.

 

 눈에 보이는 건 다 흙으로 변한다. 돌아간다는 건, 흙으로 간다는 말이다. 육신은 그림자 같은 것이다.

 

죽었다 살아난 체험을 먼저 말했지만, 그건 초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과정을 지나자 단전이 틀어빠지는 것 같더니 정력이 뻗치기 시작했다.

 

극처에 이르자 시간이 끊어짐. 천공이 그대로 청청했다. 금오스님에게 그런 사정을 말씀드리자 ‘그것이 초 견성이니라’고 하였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서 듣지 못한 답을, 고승을 만나서 얻었던 것이다. 금오스님은 16세에 들어가서 24세 때에 유점사에서 초 견성을 체험했다고 하면서, 그런 체험은 세수하면서 코를 만지는 것처럼 쉬운 거라고 일러 주었다.

 

 정액을 누설한 자는 참선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선방에서는 숫총각들만 받는다. 그래야만 정이 새지 않고, 신이 밝아지기 때문에 초 견성에 이른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아주 편안한 상태가 된다. 몇 날, 몇 달을 앉아 있어도 그저 편안할 따름이다.

 

 선방에서 석 달 간 결자를 하고 들어가면 꼼짝 못한다. 동안거(冬安居), 하안거(夏安居) 두 번 하면 1년이 금방 가 버린다. 나는 그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진짜 견성을 못하고 간다. 그런 참선법보다 100배나 더 빠른 법이 바로 영부일기다.

 

그래서 작지부지성의웅약, 성인을 만들어내는 약이다. 정식으로 한다면 6부를 치려면 4시간은 걸려야 한다.

 

 이 수련을 받던 군대 교관들이 ‘우리가 48일 훈련할 시간을 7일로 끝냈다’고 할 정도로 힘든 수련이다.

 

그래도 여러분은 굿굿하게 잘 버티고 있다. 그것이 바로 정신집중의 덕분이다. 앞으로는 48일(6개월) 수업을 받으면 1주일 받은 것과 같도록 하겠다.

 

 교리와 선법의 구분이 되는가? 선법은 참선을 100배로 축소 한 것이다. 100년 걸려 견성 할 걸 하루에 축소한 것이다.

 

 수천, 수 만년 업장에 사로잡힌 중생들을 바로 자성으로 인도한다. 수 천 년 녹이 슨 놋그릇은 약을 발라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선약인 영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도를 닦느니, 맘을 닦느니 한다. 닦긴 도대체 뭘 닦는단 말인가?

 

본래 있던 건데, 닦을 게 뭐가 있나? 도는 닦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다. 符는 그리는 게 아니라 치는 것이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 나온 말이다.

 

 친다는 건 키운다는 말이다. 그린다는 건 뭘 보고 흉내를 내지만, 친다는 건 전수 받은 걸 키운다는 말이다.

 

도를 닦는다고 하는 건 선천 생장기에나 있던 것이지, 성장기에는 가당치 않다. 여러분의 맘으로 받아들인 영부가 하루하루 커 가도록 하는 게 부를 친다고 하는 말이다.

 

 오늘 배운 내용을 읽어보자. 선법의 머리가 교리의 머리다. 선법은 붓으로 대변을 하고, 말은 글로 대변한다.

 

선법과 교리의 차이점은 불립문자. 무문도통이다. 말로 떡을 하면 다 굶어죽는다. 배불러서 죽었는데 굶어 죽은 격이다. 입을 벌리는 순간부터 거짓말이 쏟아져 나온다.

 

선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건 말 많은 자다. 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말을 끊어야 한다.

 

 다 같이 소리를 내어 읊어 보자. 익자삼우손자삼우 ... 수화금목이 ... 천지지중앙은 심야고로 ... 충자는 욕야니 ... 동어예자는 ... 서자는 원천지지 ...

 

 부는 오늘 12번 그렸다. 오전 6번, 오후 6번. 안 보고 그릴 수 있나? 하루만 더 해도 안 보고 그릴 수 있나?

 

 그럼 이 문장들은 몇 번을 외우면 될까? 나는 한 번 외워야겠다고 맘을 먹으니까(글을 안 보겠다고 맹서한 지 10년 차에, 초등학교도 3년 밖에 안 되었는데) 한문이란 건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어서, 편지지에 자잘하게 써서 보니 양면에 한 장도 안 되더라.

 

 객지에 있다 형님 댁에서 기숙하는데, 무슨 일이라도 해야 밥값을 하지. 형님과 일을 하면서 현무경을 암송하였다.

 

 형님이 하루 하는 것보다 어릴 적부터 일이 몸에 밴 나를 못 따르기에 남는 시간에 틈틈이 한 구절 외우고 일하고. 양부 외우는 건 30분 정도가 걸리고, 점심 먹고 나서 하편을 외웠다.

 

 그렇게 해서 해 떨어지기 전에 다 외웠다. 정신이 다른 데 있으니 등에 있는 짐은 안중에도 없었다.

 

 집 문에 당도하기 전에 줄줄 외울 수 있었다. 그 후로 일을 하면서 외우는 게 습관이 되었다.

 

 여러분도 지금부터 30분 내에 양부를 다 외워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