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를 매단 것은 머리를 매단 것인데, 머리는 사람의 뿌리이다. 사람은 머리를 하늘로 하고 짐승은 머리를 땅으로 향한다.
대들보는 하늘을 상징한다. 마지막 심판은 하늘에 대고 하는 것이다.
일경은 개벽주와 종도들이 이씨조선을 복원하는 의병인줄 알고 잡아들였으나 아무런 혐의가 없는데도 문공신의 겨드랑이를 차서 끝내 사경을 헤매게 한다.
이날의 일진은 병술이다. 후천 용담도에서보면 병술은 서북에 있던 유술(酉戌)이 동남방으로 자리를 옮겨 유손술(酉巽戌)로 천지의 중앙이 된다. 그곳이 밝아져야 비로소 정해로 심령신대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정미년 섣달 그믐날에 이런 공사를 보아서 천자신을 서양에서 조선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천자신은 낙서의 시간이 子에서 출발을 하였는데, 子는 天의 출발이기 때문에 천자신이라고 부른다.
그 천자신이 축, 인, 묘, 진, 사, 오를 지나 미에 이르면 후천으로 개벽한다.
미회에 개벽이 시작하기 때문에 개벽주도 양띠로 오셨고 성씨(姓氏)도 역시 양이 들어간 강(姜)씨로 원시반본한다고 하였다.
복희씨가 풍씨(風氏)여서 바람처럼 그 대가 끊어졌고, 염제(炎帝) 신농(神農)씨가 최초에 강씨를 사용하였으므로 다시 원시반본하기 위하여 강씨로 오게 되었다고 대순전경에는 기록을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를 염제라고 부른 사실이다.
염제는 뜨거운 남방의 신이다. 이는 곧 원시반본하는 개벽은 다시 남방에서 시작한다는 말이다.
낙서는 북방의 1감수에서 시작하였지만, 용담도는 남방의 2곤지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의 천간은 丁이요, 미회가 개벽의 시점이므로 정미년에 이런 공사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야만 다음 해인 무신(1908년), 기유(1909년) 양년에 걸친 천지의 한문(捍門)에 맞춰 개벽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철저하게 도수에 따라 개벽주는 공사를 단행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정미의 未位로 천자신이 넘어 왔는데, 그 방향이 서양이므로 부득이 동방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따라서 未를 동방 寅으로 옮기는 상징이 바로 백목(白木)이기에 굳이 인부를 불러 백목을 지우게 하여 경무청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人夫를 부른 것은 寅部를 상징한다.
통역순검 문형로(文亨魯)는 ‘노나라를 글로써 형통케 하는 이름’이므로 곧 공자를 상징한다.
공자 때문에 선천의 낡은 폐습이 생겼으므로 마땅히 그가 통역을 잘 하여 후천의 인존문명을 세워야 하건만, 낡은 낙서문명으로는 그런 능력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개벽주는 그에게 일부러 ‘혼란복멸(混亂覆滅)에 임한 천지를 개조하여 새 세상을 열고 대비겁(大否劫)에 싸인 사람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락을 누리게 하려는 모임이로다’고 역설한 것이며, 문형로 놀래서 감히 그런 대담한 말을 하느냐고 하자, ‘천하사에 뜻하는 자 어찌 별로히 있으리오 그대는 도략(韜略)과 자비(慈悲)가 있으면 어찌 가만히 앉아서 볼 때리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처럼 개벽주는 모든 것을 그의 사명인 개벽과 연결해서 언행을 하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미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박권임(朴權任)이 공신을 구두발로 차서 사경을 헤매게 한 일도 뜻이 깊다.
박권임의 朴은 十八 용담도수를 살펴서(卜) 후천의 권능(權)을 맡아야(任) 하는 이름인데, 오히려 선천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공공연히 믿어야 할 公信(현무경)을 발로 걷어차서 사경을 헤매게 하였다.
그러기에 모든 글을 두루 돌아 본 문총순(文總巡)이 등장하여 박권임을 꾸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