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
2단은 2의 곱셈을 도표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2, 4, 6, 8 …처럼, 항상 ‘짝수’로만 나열되게 마련이다. 짝은 ‘상대성’을 의미한다.
상대가 있다는 말은 곧, 비교나 분별을 가리킨다. 비교나 분별은 왜 필요할까? 그것은 더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한 방편이다.
, 3, 5 … 등의 홀수는 양수이기에 움직이는 데에 주력한다. 움직이는 데에 주력하다 보면 자신을 다른 것과 비교, 혹은 분별하는 데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비교나 분별을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반성(反省)’을 가리킨다.
반성이 없는 인생이나 업무추진은 반드시 벽에 부딪치게 된다. 숫자가 굳이 ‘홀수’와 ‘짝수’로 구성된 까닭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2는 모든 짝수의 어머니다. 1이 모든 홀수의 아버지이므로 1과 2는 모든 숫자의 부모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아버지의 정자를 받아 어머니는 아기를 생육(生育)하는데, 아기가 잉태된다는 사실은 곧 형체가 생긴다는 말이고, 형체가 생긴다는 것은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2를 가리켜 ‘땅’이라고 한다. ‘땅’이라는 표현은 본래 ‘따’에서 왔다. 지금도 지(地)를 가리켜 ‘땅지’라고 하지 않고, ‘따지’라고 하며, 곤(坤)을 ‘땅곤’이 아닌 ‘따곤’이라고 한다.
‘따’는 ‘따로’와 같은 의미가 있는데, 나무에서 열매를 ‘따다’고 하는 것이나, ‘따로’라고 하는 말 등이 그 좋은 예다.
1은 아직 음양이라는 둘로 갈라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한 얼’ 즉, 하늘이라고 하는데 비해, 음양으로 따로 드러난 상태를 가리켜 ‘땅’이라고 한다.
양수는 홀수라고 하여 동(動)을 상징하는데, 홀수는 하나로 통일된 상태요, 짝수는 음양으로 분리된 상태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하나로 통일된 상태가 훨씬 용이하다. 1에서 파생한 모든 홀수들이 양수라고 하여 ‘동(動)’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이처럼 통제하기 편한 것이 홀수이기 때문이다.
0이 무형을 가리키고, 1이 유형의 시작이라면, 2는 유형 속에 들어 있는 음양을 가리킨다. 0은 동정, 음양, 유무가 없지만, 1은 동(動)이요, 2는 정(靜)이고, 1은 양(陽)이요, 2는 음(陰)이다.
따라서 2단은 만물 속에 들어 있는 음양의 상태를 나타낸다.
2단 기본수
2 × 1 = 2 → 2 - 음양이 태극에서 나옴.
2 × 2 = 4 → 4 - 음양이 다시 4상으로 분화.
2 × 3 = 6 → 6 - 음양이 천지인으로 벌어 짐.
2 × 4 = 8 → 8 - 음양이 4방에 충만함.
2 × 5 = 10 → 1 - 음양이 사물의 중심에서 10천간으로 자리를 잡음.
2 × 6 = 12 → 3 - 음양이 6기를 타고 비로소 12개월, 12시를 이룸.
2 × 7 = 14 → 5 - 음양이 7성에서 빛을 발함.
2 × 8 = 16 → 7 - 음양이 8방에서 드러남.
2 × 9 = 18 → 9 - 음양이 9궁으로 출입함.
합 90 45
2는 1 + 1에서 나온다. 앞의 1은 음이요, 뒤의 1은 양이다. 그러므로 2는 음양의 합이다.
이에 비해 1은 0 + 1에서 나왔는데, 이때의 1은 음도 아니요, 양도 아니라, 음과 양이 아직 분화되기 전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을 태극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2는 1태극 속에 있던 음양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