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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이런 일이!

영부, 精山 2007. 3. 21. 08:47

‘천사 남편’의 죽음

17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주상복합빌딩 건설 현장에서 불이 났을 때 박광진(46)·전원심(43)씨 부부는 6층에서 도배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도 평소처럼 새벽부터 도배를 시작한 부부는 오전 8시20분 갑자기 아래층으로부터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고 느낀 부부는 손을 잡고 4층으로 급히 내려갔다. 그 순간, 다른 인부들이 “어서 올라가” 소리치며 뛰어 올라오고 있었고, 그들 뒤로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 올라왔다. 큰 불이 난 것이다. 부부는 황급히 뛰었지만, 연기는 더 빨리 다가와 부부를 덮쳤다. 6층으로 올라오자마자, 유독가스를 마신 부인 전씨가 쓰러졌다. 남편 박씨는 “정신 차려! 여기서 쓰러지면 죽어!”라고 외치며 부인의 가슴을 두들겼다.

부부는 다시 힘겹게 8층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전씨는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남편은 8층 외벽 유리를 발로 찼다. 30층짜리 초대형 건물의 특수유리였지만 박씨의 발길질에 깨졌다. 사람 머리가 겨우 들어갈 만큼 구멍이 나자 박씨는 부인의 머리를 바깥으로 내밀게 해 숨을 쉬게 했다. 그러는 동안 박씨는 연기를 계속 마셨다.



 

몇 초가 흘렀을까. 부인 전씨의 의식이 돌아왔다. 다시 힘을 낸 부부는 12층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연기는 더 매캐해졌다. 1m 앞도 보이지 않았고, 부인은 갑자기 남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보람이 아빠! 어디 있어요? 어디예요?” 애타게 불렀지만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남편 박씨는 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다. 전씨는 구조대원들에 의해 병원에 실려왔다. 그러나 박씨는 2시간 만에 발견돼 병원에 옮겨졌고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박씨는 이 화재사건의 유일한 희생자가 됐다.

하루가 지난 18일 밤 서울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는 부인 전씨가 산소호흡기를 입에 댄 채 남편을 애타게 찾았다. 남편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 얼굴엔 아직 연기 검댕이 묻어있었다. 유독가스에 목구멍이 손상됐지만 위독한 상태는 넘겼다. 전씨의 검댕 섞인 눈물이 하얀 베개로 떨어졌다.



 

“우리 남편 어디 있어요?” 의식을 찾아 겨우 입을 뗀 전씨는 남편부터 찾았다. 시누이 박종순(53)씨가 “응, 니 신랑 괜찮아.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어”라며 다독였다. 그래도 전씨는 남편을 찾았다. “나, 우리 신랑 있는 데로 데려다 줘. 같이 나란히 누워 있을래.” 옆에 있던 의사가 “아주머니, 남편 분 괜찮아요. 곧 옮겨드릴 테니 며칠만 참으세요”라고 말하곤 고개를 돌렸다.

숨진 박씨는 60여명의 직원을 이끄는 도배업체의 현장 실무자였다. 늘 살림이 빠듯해 부인 전씨도 함께 도배일을 했다. 박씨는 공사대금을 늦게 받을 때는 빚을 내서 직원들 월급을 밀리지 않게 챙겨주곤 했다. 박씨의 큰 형 세진(56)씨는 “동생 부부는 평소 내가 보고 있어도 껴안고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며 “(동생의 사망을) 부인에게 알리지도 못하는 심정을 누가 알겠냐”며 눈물을 쏟았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부부는 슬하에 딸 보람(17)이와 아들 윤수(15)를 뒀다.

아버지의 빈소에서 상복을 입은 보람이는 “얼마 전 아빠가 용돈을 주면서 ‘성실하고 예쁜 딸이 되길 바란다’는 편지도 써주셨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교복을 입은 윤수는 “아빠가 저기서 곧 나타날 것 같다”며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