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선생께서 시천주라는 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천주님이 인간과 함께 하는 시기를 밝혀주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사람들은 '하느님은 내 맘에 있어'라는 식으로 생각들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원론적인 얘기일 뿐, 구체적으로 하느님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무엇을 가지고, 누구에 의해서 등장한다는 6하원칙이 결여된 것이었다.
수운선생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6하원칙에 입각해서 천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실상을 전해주셨다.
동학이란 이름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서학으로서는 도저히 그런 개념이 아예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易의 개념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양에서는 1,000여 년 간 0이라는 숫자를 쓰지 못하게 하였으니 진리를 어찌 알 수 있으리오!
0이라는 숫자를 쓰면 야훼(여호와)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하여 아예 쓰지 못하게 하고, 만약 0을 입 밖에라도 내는 사람이 있으면 마녀사냥으로 화형에 처하곤 하였다.
이런 기막힌 일을 자행한 터전 위에 서 있는 것이 오늘의 기독교임에랴!
시천주의 구체적인 6하원칙에 대해서는 이미 현무경 해설편에 여러 곳에 밝혀 놓았으니 여기서 재언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곳에서는 다만 그런 이치들을 정리해서 서양의 허깨비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 인간의 정체성과 위대함을 만끽할 수 있는 정체시스템을 제시하기로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이리라.
여하튼 수운 선생께서 주창하신 시천주를 제대로 안다면 왜 기미년(1859년) 기미 10월에 率妻子하여 구미 용담정으로 들어갔는지, 왜 음 4월 5일에 득도를 하고, 영부와 주문을 받은 것인 지, 그 이치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왜 동학과 그 후신인 천도교는 전통적으로 종교에서 마치 무슨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양, 警遠했던 속세의 정치에 깊이 관여한 것인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