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추에 이르기를 機之動不離其空空中之機淸淨而微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사람 몸에서 기가 움직일 때에는 텅 빈 구멍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인데, 구멍에 있는 기는 고요하고 미미하여 잘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인체의 구멍을 가리켜 경혈(經穴)이라고 하는데, 하늘처럼 커다란 구멍은 없다.
그것이 인체에 9개가 있으니 이는 곧 하늘은 도합 9천으로 이루어졌다는 반증이다.
아홉 개의 하늘은 그걸 감싸는 바탕까지 합하여 10이기에 10천간이라고 한다.
이처럼 인체는 10개의 구멍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를 가리켜 ‘십구멍’이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단전호흡이나, 요가, 기공수련 등을 통하여 기를 느끼고 활용하는 사람들이 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
그러나 대부분 아직도 막연하면서도 추상적으로 기를 논하는 경향이 강하다.
질병을 고치는 요령은 사실 기를 얼마나 잘 터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인체에서 기가 어떻게 작용을 하고, 그것이 어떻게 질병과 연관되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기에 대한 고증을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은 ‘영추(靈樞)’다.
황제내경은 소문(素問)과 영추로 구성된 것인데, 영추편은 침(鍼)에 관한 전문서적이다.
여러 가지 약재도 기를 다루고 혈을 다루는 것은 같지만, 침만큼 직접적인 효과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기를 언급하려면 어쩔 수 없이 영추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기서 전문적인 침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는 부적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침술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는 점을 십분 이해해주기 바란다.
기가 인체를 한 바퀴 주행하는 시간은 30분이다.
그 근거는 5 × 6 = 30에 있다.
우주나 인체는 6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이 5방을 일주하면 30이다.
또한 사방이나 사계절 중에서 어느 한 곳을 일주하면 30이다.
1시간은 120분인데, 그 1/4이 30이기 때문이다.
침을 놓고 대략 30분 간 유침(留鍼)하는 것도 이와 같은 데에 연유(緣由)한다.
기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감기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치자.
날씨가 사나워서 감기가 왔느냐, 아니면 날씨는 괜찮았는데 자신의 몸이 약해서 감기가 걸렸느냐 하는 걸 먼저 알아야 한다.
만약 날씨가 워낙 추워서 그랬다면 외부에서 사기가 들어가 몸이 실해진 것이므로 사(瀉)하는 해열제나 해표제를 먹으면 된다.
그러나 날씨가 좋은데 감기가 걸렸다면 몸이 약해서 온 것이므로 당연히 보(補)하는 약이나 처방을 써야 한다.
대체로 서양의학은 사하는 약을 쓰게 마련인데, 몸이 약해서 생긴 병에는 보법을 써야 한다.
혈압이 높은 사람이라도 사해야 할 경우가 있고, 보해야 할 경우가 있다.
사해야 할 경우는 뒷목 부위를 보면 살이 두껍고 뻣뻣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럴 때에는 삼릉침으로 자침을 한 후에 사혈을 하면 금방 시원해진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몸이 튼튼하고 실한 타입이 많다.
그러나 몸이 튼실하게 생겼는데 뒷목이 뻣뻣하지 않고, 혈압이 높은 경우도 많다.
이런 것은 대개 순간적으로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휴식을 취하게 하면서 족탕을 하면 효과가 좋다.
병이 있으면 먼저 음병이냐, 양병이냐를 파악해야 한다.
체했을 때에도 많이 먹어서 체한 경우가 있고, 조금 먹었는데도 체한 경우가 있다.
조금 먹었는데도 체한 건 체했거나, 기분이 상한 경우다.
이건 소화기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많이 먹어서 체한 건 소화기 자체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화기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운동을 하던지, 토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기분이 상해서 온 것이라면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
몸에서 열이 나는 경우도 음과 양이 각기 다르다. 양이 많아서 열이 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寒)이 모자라서 생기는 경우도 있다.
몸이 냉한 것도 냉이 실해서 생기는 경우가 있으며, 반대로 양이 너무 모자라도 생긴다.
이런 건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남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이런 것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