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을 놓는 사람들을 보면 보법이냐, 사법이냐를 놓고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법은 부족한 기를 보충하는 것이요, 사법은 넘치는 기를 빼주는 것이다.
침을 놓을 때에 빨리 찌르면 사법이요, 천천히 찌르면 보법이다.
뺄 때에도 빨리 빼면 보법이요, 천천히 빼면 사법이다.
이런 것은 황제내경 영추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
침이란 것은 막힌 인체의 기를 소통하게 하는 방편으로 나온 것인데, 침을 찌를 때에는 밖에서 기를 천천히 집어넣는다고 본 것이고, 침을 뺄 때에는 천천히 빼면 안에 있는 기가 따라서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빨리 빼라고 한 것이다.
물론 영수보사라고 해서 경락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침을 꽂으면 보법이요, 역으로 꽂으면 사법이라고도 한다.
물론 침을 맞아서 신기한 효험을 보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사실 침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약으로 고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면 신속하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침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침도 역시 일시적인 방편은 될지언정, 근본적인 치유책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막힌 하수구는 우선 시원하게 뚫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침이다.
그러나 하수구가 막힌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하수구에 비해 너무 많은 분량의 오물을 쏟아 붓는 건 아닌지, 하수구가 너무 낡은 건 아닌지, 하수구관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주변의 환경에 문제가 있는 건지 등등, 총체적인 문제를 살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체의 질병에도 이런 관찰이 긴요하다.
요통이 있을 경우, 다급하니까 우선 통증을 없애주어야겠지만, 그걸로 끝낸다면 다시 재발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만약 위장이 안 좋아서 생겼다면 위장과 연결된 모든 부위를 총체적으로 치료해야 할 것이고, 허리뼈에 문제가 있었다면 척추교정이나 수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복합적으로 질병이 오게 마련이므로 단순한 처방만으로는 온전한 치료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의 흐름을 아는 일이다.
마음은 비록 무형이지만 기를 타고 가게 마련이며, 육신도 역시 기의 흐름에 따라 피가 돈다.
정신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원래 ‘정기신’이라는 인체의 3보를 줄여서 한 말이다.
기는 정과 신 사이를 왕래하면서 ‘정기(精氣)’도 되고 '신기(神氣)‘도 된다.
정은 물질의 정수를 가리키며, 신은 영혼의 정수를 가리킨다.
기는 이 사이에서 왕래하면서 정신을 탁하게도 하며, 맑게도 한다.
오장과 육부 중에서 어느 장기에 병이 든 것이 더 위험할까?
이런 것도 기의 흐름을 이해한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오장은 음의 성질이 강하고, 육부는 양의 성질이 강하다.
음에 병이 걸리는 것과, 양에 걸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
양은 활동성이 강하고, 음은 지키는 성질이 강하다. 비유하자면 집이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동물들이 다쳤다고 가정할 때에, 어느 것이 더 영향력이 클까?
물론 생명이 더 비중이 있다고 하지만, 집이 무너지면 아예 활동할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므로 그 영향력이 더 크다.
이와 마찬가지로 양에 병이 드는 것보다 음에 병이 드는 것이 더 무섭다.
달리 말하자면 가정에서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과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 부담이 되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남자가 피우는 바람은 본래 양은 잘 움직이는 법이므로 그리 큰 위험은 없다.
그러나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그 폭풍은 걷잡을 길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예로부터 여성에게 유독 정조를 강조한 까닭은 단순하게 남존여비 사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오장에 병이 들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