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일치하는 숫자를 가리켜 천유 13도라고 하는데, 자전은 하루를 형성하는 것이요, 공전은 1년을 형성합니다.
하루는 12시가 되는 것처럼, 1년은 12개월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시간은 한 달인 셈이지요.
이런 이치에 의해서 年, 日을 같이 보고, 月, 時를 같이 봅니다.
즉 年, 日은 태양으로 月, 時는 태음으로 봅니다.
천유라는 것은 모든 형상이 실제로 드러난다는 의미인데, 이는 곧 음과 양이 비로소 하나가 되어 실제로 등장한다는 의미입니다.
13이라는 숫자 이전에도 많은 수가 있지만, 동서남북의 사방에서 천지인이 하나로 단일화 하는 숫자는 13이기 때문에 천유13도라고 하였다 함은 앞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이것을 선천과 후천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기로 할까요?
선천 물질세상에서는 시간의 시작을 임자시로 하였습니다.
임자의 壬은 1陽水요, 子도 역시 1陽水이므로 철저하게 선천은 1陽水로 시작하고 있군요.
이에 반해 후천의 정신문명은 계사로 시작을 하고 있는데, 癸는 6陰水요, 巳는 2陰火입니다.
선천이건 후천이건 모두 물에서 시간이 나왔는데, 다만 선천은 양을 위주로 하므로 천간이 1壬이요, 후천은 음을 위주로 하므로 6癸가 되었지요.
그렇다면 지지도 선천에는 陽水인 1子가 되었다면, 후천에도 역시 陰水인 6亥가 되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계사시가 아니라 계해시라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역을 창시하신 일부선생께서는 후천의 시두를 계사시라고 밝혔던 겁니다.
그걸 증산도에서는금과옥조로 여겨서 계해시가 후천의 시두라고 가르치고 있지요.
그걸 보신 개벽주께서는 ‘일부가 한 수가 미진하였다’라고 하면서 계해시를 계사시로 바꾼 겁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계사시가 되어야만 할까요? 지지만 바꿀 것이 아니라, 아예 천간도 바꾸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계사시가 아니라, 정사시를 후천의 시두라고 해야 하겠지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바뀌는 것은 무형이 아니라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늘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법이고, 땅이 움직이는 법입니다.
선천은 물질세상이기에 물질을 만들어내는 물에서 시두가 나왔기에 임자시라고 한 것이고, 후천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정신을 상징하는 불에서 시두가 나옵니다.
불 중에서도 후천은 음이기 때문에 음화에 해당하는 巳時가 시두로 정해진 것입니다.
그것을 인체로 말한다면 壬癸 북방에 해당하는 곳은 머리입니다.
시두를 인체에서 비유한다면 자전과 공전의 의식, 즉 사적인 의식과 공적인 의식의 출발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적이건, 공적이건 의식은 모두 머리에서 나가기 때문에 선천은 임이요, 후천은 계라는 천간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처럼 인체에서의 천간은 머리를 북방 임계로 보고, 배를 남방 병정으로 보며, 좌측의 수족을 동방 갑을로 보고, 우측의 수족을 서방 경신으로 봅니다.
그럼 지지로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선천에는 인간들의 의식이 물질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물질을 만들어내는 水인 子時가 시두가 되었던 것이고, 후천에는 정신적인 것을 위주로 하게 되므로 火인 사시(巳時)를 시두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체의 머리는 그대로인데 그 속에 물질적인 의식이 자리를 잡으면 선천이요, 정신적인 의식이 자리를 잡으면 후천이라고 보면 됩니다.
즉 북방은 그대로이기에 천간도 그대로이지만, 지지는 정반대로 뒤집어져야 하는 것이 순리라는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