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경을 기반으로 한 황극력에서는 일주만 제외하고는 기존의 태양력, 태음력과는 전혀 다른 태세, 세수, 시두를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연주도 다르고, 월주도 다르며, 시주도 다릅니다.
이걸 잘 못 이해하면 마치 기존과는 다른 공전과 자전의 운행이 생긴 줄로 착각하게 마련이지요.
태양력과 태음력은 각기 태양과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운행도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양을 위주로 하는 관점에서는 태양력을, 음을 위주로 하는 관점에서는 태음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별을 위주로 하는 星曆을 현대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태양과 태음(달)과 더불어 별들이 운행하고 있는데, 이를 가리켜 보통 일월성신(日月星辰)이라고 부릅니다.
일월성신이라면 당연히 일력(양력), 월력(음력)과 더불어 성력도 나와야 하는데, 그런 말을 들어 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성력을 쉽게 말하자면 28수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말이여, 28수가 돌아가는 적도를 기준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황극력은 바로 적도를 기준으로 해서 나온 역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존과는 다른 28수의 운행을 황극력에서는 얘기하게 되었지요.
각항저방심미기 두우여허위실벽 규루위묘필자삼 정귀유성장익진으로 운행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진익장성 ... 저항각으로 운행한다고 본 것이며, 각성은 반드시 임자, 임오일과 맞물리고, 항성은 신사, 신해일과 맞물리며, 저성은 무인, 무신일과 맞물리는 등등, 기존에 들쭉날쭉 했던 28수의 운행이 아니라고 한 겁니다.
28수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곧 인간이 기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태양은 하늘을 기준으로 한 것이요, 달은 땅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28수는 인간을 기준으로 합니다.
인간의 의식에서 태양을 기준으로 하면 태양력이요, 달을 기준으로 하면 태음력이며, 28수를 기준으로 하면 성력이라는 말이지요.
성력은 음이나 양,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의 중도, 천지의 중도를 가리킵니다.
그러기 때문에 태양력과 태음력의 도수가 다른 것처럼, 성력의 도수도 다르게 마련입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천지(일월)의 그늘에서 자립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음과 양의 어느 한 쪽으로 일방적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것을 인존세상이 다가오니까 개벽주께서 몸소 그 이치를 밝혀주기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나오셔서, 친히 현무경이라는 '판 밖 문명'을 전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유년(서기 1909년) 정월 일일 사시를 기점으로 하여 후천의 태양력을 제시하고, 서전 서문에 나온 것처럼 '又 十年'이 지난 기미년(서기 1919년)에 태음력의 머리를 들어주는 상징으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으며, '복중신명 80년'이 지난 기사년(서기 1989년)에 황극력의 머리가 들려져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원리는 현무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기사년 무진 3월 신해 16일에 비로소 황극력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날인 것인 가에 관해서는 현무경 해설을 통하여 상세하게 고찰해야 하겠지만, 그로부터 적멸수 19일이 지난 기사 4월 5일 기사일로부터 실질적인 후천의 황극력 정월 초하루가 시작되어 '기사년 정유월 기사일 계사시'라는 후천 사주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선천의 3원두법과는 전혀 다른 5원두를 기준으로 해서 나왔는데, 선천의 물질위주(태양과 달을 위주로 한 것)과는 달리 천지인이 하나로 일관하는 중심점, 3위1체의 중심점인 인간의 자성에서 모든 걸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천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신을 외부에서 찾고, 얼이 빠진 채로 살아가게 마련이지요.
물질을 기준으로 할 적에는 사주의 기초인 시간의 머리, 즉 시두를 子時로 하였지만, 자성을 기준으로 할 적에는 巳時를 시두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선천의 12지지가 모두 자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주만 제외하고 태세, 세수, 시두가 모두 달라진 것입니다.
이런 이치에 밝아지지 않으면 진정한 '개벽'의 의미를 결코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