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나 인간에게는 다 같이 기가 흐르게 마련인데, 기가 움직이는 걸 ‘氣運’ 혹은 ‘運氣’라 하며, 기에 색이 있는 걸 가리켜 ‘氣色’이라 하고, 기가 통하는 것을 가리켜 ‘氣通차다 = 기똥차다’라고 하는 등, 우리 말에서 기가 들어가는 건 무수합니다.
이처럼 기가 나타내는 징후를 줄여서 ‘氣候’라고 합니다. 기후는 보통 ‘날씨’라고 부르는데, 날은 ‘살아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결국 날씨는 ‘살아 있는 씨’라는 말이 됩니다.
죽은 씨가 아니라 살아 있는 씨 즉,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 날씨의 의미입니다.
천지에는 날씨가 있다면 인간에게는 ‘맘씨’가 있습니다.
날씨가 모든 생물체의 안위와 변화를 주관하는 것처럼, 맘씨는 인간의 모든 걸 주관합니다.
따라서 날씨의 흐름만 잘 관망한다면 맘씨의 흐름도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스승은 자연이라고 한 것이며, 자연의 주체인 하느님만이 참다운 인간의 스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목구비가 성리대전 팔십권이라고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목구비는 맘씨를 생장, 성장 시키는 네 기둥입니다.
그것은 마치 일월성신이 날씨를 조성하는 네 기둥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일월성신과 이목구비의 관계를 아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첩경입니다.
간략하게나마 이목구비와 일월성신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앞에서 日은 暑, 性, 色, 目이라 하였고, 月은 寒, 情, 聲, 耳이라 하였으며, 星은 晝, 形, 氣, 鼻라 하였고, 辰은 夜, 體, 味, 口라 하여 기본적인 언급은 하였습니다.
하지만, 보다 세밀한 부분까지는 언급하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태양을 가리켜 性이라고 한 이유는 무얼까요?
태양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입니다.
태양에서 모든 별들이 파생하였다고 하는 것은 학계의 정설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의 정자에서 모든 자녀들이 다 나간 것과 같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性이라는 글자가 心(忄)에서 生한다는 복합적인 의미가 있는 걸로 보아도 대충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즉 마음의 씨가 곧 性이라는 뜻입니다.
마음 자체는 心田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밭이라고 볼 수 있는데, 거기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열매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性田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반대로 性能이라는 말은 있어도 心能이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心이라는 문자가 일월성신을 상징하는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왜 心田이라는 말이 나온 건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즉 心田에서는 일월성신으로 상징되는 ‘성정형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따라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성정형체’를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성정형체는 일월성신을 다스리는 법과 같습니다.
태양을 性이라고 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달을 情이라고 한 것과 비교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