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노래가 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글의 내용으로 보면 사랑하는 님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애틋한 심정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마지막에 ‘제주 앞바다 달맞이 가자’고 한 말을 음미하면, ‘아하! 결국은 새로운 후천의 달(酉正月)을 맞이하자는 말이구나!’하는 탄성이 나올 것이다.
濟州는 곤경에 빠진 중생들을 극락으로 ‘건네주는 곳’이므로 후천의 용화세계를 가리킨다.
‘명년 이월 춘삼월 나면 다시 피는 꽃이로구나’라고 한 것도 역시 후천의 戌2월, 亥3월을 가리킨다는 건 不問可知다.
이는 곧 선천 낙서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서 홀대를 받던 ‘戌亥之間’이 후천에는 가장 밝은 남방으로 이동하여 심령신대를 이루기를 학수고대하는 표현이다.
물론 작별을 아쉬워하는 님은 선천의 寅正月, 卯二月, 辰三月로 시작하는 12개월을 암시하고 있다.
‘明沙十里 海棠花야 꽃이 진다고 서러워마라’고 하였는데, 이는 선천 낙서 시절의 10간 위에서 피어난 12지지를 가리킨다.
명사십리는 길게 늘어선 바닷가 모래밭이요, 모래밭은 서방의 건조한 금기운을 가리킨 것인데, 그것은 물질문명을 의미한다.
물질문명은 반드시 도덕과 합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방아(방애) 찧는 소리다.
우리 속담에 이르기를 남녀의 정사를 가리켜 ‘떡 친다’고 하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서방의 義는 동방의 仁과 합하여 仁義를 이루어야 비로소 열매가 맺힌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하여도 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제 후천의 시기가 도래하였으므로 그런 속 빈 화려한 꽃들은 그간 누렸던 영화를 내어 놓아야만 하는데, 그걸 서럽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다. 꽃이 지면 열매가 등장하는 법이기에 그렇다.
이런 노래의 由來는 알 수 없지만, 개벽의 의미를 전해주려는 조상들의 깊은 지혜가 스민 것임에는 분명하다.
용천검은 용담도의 중심에 있는 1, 6水를 가리킨다.
龍泉이라는 용어가 용이 있는 샘이라는 뜻인데, 1己는 龍이요, 6甲은 泉이다.
손에 용천검을 잡았다고 한 것은, 손이 손괘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낙서의 辰巽巳 三陽之極處에서 戊辰 태세가 나온 이래, 후천의 酉巽戌 鷄龍山에서 己酉 태세가 나오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렸던가? 라는 개벽의 상징으로 인용한 싯귀다.
서기 1909 ‘기유년 정월 일일 사시‘에 현무경이 성편하기까지 무수한 세월을 갈고 닦는다는 뜻이다. 물론 기유년 정월의 세수는 정유월이다.
참고로 수운대신사와 연관 된 용천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