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부쳐
오늘은 기독교인들이 가장 큰 명절로 삼고 있는 성탄절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거리는 크리스마스 캐롤로 흥겨운 분위기가 형성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크리스마스가 실종되어 간다’고 하는 군요.
예전에 비해 훙겨웠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의미도 퇴색하였으며, 그 자리에는 거대한 다른 상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군요.
물론 특정 종교인들에게는 그런 현상이 애석하고, 안타깝게 느껴질 겁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탄생이 상업화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 날이 가면 갈수록 그런 현상은 더 두드러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기독교에서는 진정한 의식개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개혁은 반드시 온전한 깨달음을 선행해야 하는데. 애초부터 기독교는 동정녀가 애기를 낳았다는 황당한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믿음을 가리켜 盲信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동정녀는 육신의 처녀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영적인 처녀를 가리킨 것임이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는 ‘처녀 딸 이스라엘아!’ 혹은 하나님이 말하기를 ‘너희는 나의 신부니라’ 등등의 구절이 비일비재합니다.
동정녀 탄생을 최초로 예언한 이사야 선지의 기록을 보면 유다왕 아하스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방신과 타협하는 것을 보고 ‘너희가 높은 곳에서든지,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명령을 아하스에게 내립니다.
그러자 아하스는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나이다’고 대답합니다.
그때 말하기를 ‘너희가 구하지 않아도 친히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징조를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이사야의 입을 통해 하나님은 선포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백성이 모두 이방신들과 간음하는 간음녀였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는 ‘내 딸아, 너희는 자산에서 벌거벗고 간음하였느니라. 간음녀야 내게로 돌아와라’는 등의 구절이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등에 무수히 나오고 있는 걸로 충분합니다.
그 예언대로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였습니다.
따라서 동정녀는 육신의 몸을 가리킨 게 아니라, 마음에 이방신(세상 물질적인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을 가리킨 게 확실합니다.
기독교는 말하기를 ‘예수는 석가나 공자와는 달리 인간의 정액으로 태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태어났으니 탄생부터가 차원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성탄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바탕 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걸 어찌 성탄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건 주몽이나 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난생설화와도 같은 비유요, 상징입니다.
그런 걸 가지고 우월감을 지닌다면 유치한 어린애와 무엇이 다를까요?
성탄이라고 하려면 당연히 무언가 거룩한 행위를 통해서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요?
성경에는 말하기를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살아 있는 영)’이 되었다고 하면서, 둘째 사람 예수는 ‘살려 주는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산 영은 자신의 한 목숨이나 부지하는 경우이고, 살려 주는 영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려 주는 경우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받은 것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장 5절 - 11절)”
예수라는 이름은 탄생하는 육신이 탄생할 적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십자가에 달리면서 붙여졌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성탄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입니다.
그것은 분리된 육과 영, 신과 인간의 합일을 가리킵니다.
十이라는 숫자가 음 -, 양 l의 합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는 것도 음미할 만한 대목입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과거와 같은 기독교의 성탄은 퇴색해질 것입니다.
이제는 진실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거룩한 시천주들이 탄생하는 성탄절로 변할 것입니다.
천부동에서 그 기적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오운회 식구들은 산 영이 아니라, 살려 주는 영으로 탄생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식구, 내 가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주위 친지, 사회를 다시 탄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불은 이미 점화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더 밝은 몸과 마음으로 성탄절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