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증산의 탄생 연대와 개벽
다음 날 새벽 인시에 일행은 다시 강당으로 모였다. 강당은 운곡선생의 침실과 연결되어 있기에 운곡선생의 방이라고 해도 무방하였다. 정도가 강당에 들어갔을 때에 운곡선생은 이상한 글과 그림을 그린 길다란 종이를 불에 태우고 있었다. 필체에는 힘이 넘쳤으며 그림은 마치 부적처럼 보였다. 저 아까운 걸 왜 태울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정도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마을 사람들은 그걸 가리켜 영부일기라고 하였다. 불에 태우는 걸 소축(燒祝)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시천주의 탄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중에는 대순전경을 읽어 본 분도 있을 것이고, 아직 구경도 못한 분도 있을 겁니다. 읽어 본 분도 그냥 어느 위인의 일대기 정도로 대한다면 아무런 뜻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은 시천주의 탄생 연대와 지명에 관한 것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시천주의 탄생 연대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개벽의 시점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바로 거기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제대로 알지 못하면 ‘공중휴거 날자’를 잘못 잡았던 어느 단체처럼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이기 십상입니다. 하긴 기독교뿐 아니라, 증산 계열에서도 이미 천지가 개벽되는 날짜를 잘못 예측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혼돈, 허탈감을 안겨 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개벽의 날짜는 성경에도 말하기를 ‘그날과 그때는 아들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며,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걸 여호와만 안다고 주장하는 게 오늘날의 기독교입니다. 하지만 우주변화의 원리에 정통하면 누구든지 다 알 수 있는 게 또한 진리이며, 철칙입니다. 성경에도 말하기를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곳이라도 통달하느니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성령은 곧 진리의 영이라고 하였으니, 진리를 제대로 알기만 하면 누구나 하느님의 깊은 곳 까지 다 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예수가 ‘내가 다시 오리라’고 했던 까닭도 실은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입장으로 오신다는 얘기입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전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아버지는 가정과 가족의 안위는 물론 행, 불행을 모두 통찰하지만, 아들은 자신의 입장만 알고 있게 마련입니다. 물론 아들도 될 수 있으면 아버지와 같이 모든 분야에 걸쳐 성숙해지려고 하면, 그럴 자질이 충분하지만 아무래도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버지와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선천의 성인들과 후천의 개벽주의 차이점은 바로 이런 데에 있습니다.
개벽주인 시천주가 辛未生으로 오신 것은 서방의 가을을 상징하는 열매가 바로 신미이기 때문입니다. 辛이란 글자는 十을 立하는 것으로 十無極을 세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선천에서 인류가 무도병에 걸린 까닭은 십무극이 없기 때문인데, 그것을 천부경에서는 ‘一始無始一’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천은 色으로 단장을 했기 때문에 1에서 9에 이르는 물질적인 색만 있었을 뿐, 색의 근원인 십무극은 세상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이 물질세상에서는 하느님의 본성인 무극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수운선생께서 "만고 없는 무극대도"라고 동학을 찬양한 것은 이와 같은 십무극을 동학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동학과 개벽에 관한 것을 언급할 적에 상술하기로 하겠습니다. 신미는 ‘백양(白羊)’을 가리키는 것으로 흰색은 서방이요, 양은 우주의 가을이 시작하는 개벽 결실기를 상징합니다. 모든 것은 때를 따라 운행하는 것이 순리일진대, 자미회(子未會)가 이루어지는 후천의 개벽에 맞추어 시천주는 탄생해야 하는 이치가 담긴 것입니다.“
정도는 자미회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전날에 선천 낙서의 지지와 용담의 지지가 7도를 이동해서 각기 합하는 것이 개벽이라는 걸 선배들한테 물어서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子未會, 丑申會, 寅酉會, 昴戌會, 辰亥會, 巳子會, 午丑會, 未寅會, 申卯會, 酉辰會, 戌巳會, 亥午會 하는 식으로 암송이 저절로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하는 것은 아직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는 운곡선생에게 질문을 하였다.
“저어, 子가 7도를 이동해서 未와 會合을 이루어 자미회가 이루어진 건 알 수 있겠는데,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것이며, 그 의미가 무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으음.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