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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未會

영부, 精山 2008. 1. 14. 06:36

“그렇지. 공부는 그렇게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하는 법이지.”

 

운곡선생은 흐뭇한 미소로 정도를 바라보았다.

 

“12지지는 본래 우주의 시간을 가리키는 부호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태양과 태음을 바탕으로 해서 지구가 돌아가는 역학(力學) 관계에서 비롯합니다. 즉 내 몸을 싣고 지구가 지금 어느 기운대로 흘러가느냐 하는 것을 알아내는 척도가 바로 시간입니다. 그것은 곧 우주의 거대한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느냐 하는 것과 직결합니다. 우주의 마음은 사실 우리 모두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내 맘대로 산다’는 게 있지요? 우주도 마찬가지로 우주의 맘대로 살아갑니다. 사람의 마음을 알면 우주의 마음도 보이게 마련인데,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심전심입니다. 내 마음은 12경락을 통해서 흐르는 것처럼, 우주의 마음도 역시 12개의 통로를 따라서 움직이는데, 그걸 가리켜 12지지라고 부릅니다. 물론 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천간은 12개의 통로가 움직이는 바탕을 가리키는 점이 다를 뿐이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렇게 정리를 하고 넘어가세요.”

 

운곡선생은 칠판에 ‘천간 - 천지의 몸, 지지 - 천지의 마음’이라고 크게 썼다.

천간과 지지에 대해서는 정도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천지의 몸과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터였다.

그러나 무언가 휙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것이 있었다.

 몸은 사지와 오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천간도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木金火水가 있으며 가운데 오장이 있는 것처럼 천간도 역시 중앙에 모든 걸 化하게 하는 土가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마음은?

마음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몸속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천지의 마음도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몸이라는 유형체를 통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천지의 마음도 천지라는 큰 틀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즉 몸은 마음을 통하고, 마음은 몸을 통해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움직인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걸 정도는 그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은 안 보이는 존재이므로 안 보이는 기를 통해 드러나는데, 기가 다니는 통로를 가리켜 經絡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 그러면 12지지는 당연히 천지의 기가 교통하는 도로였군!

그는 침술을 배우던 때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침술은 12경락이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때 외웠던 것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巳亥궐음풍목 수궐음심포, 족궐음간, 자오소음군화 수소음심, 족궐음신, 축미태음습토 수태음폐 족태음비, 인신소양상화 수소양삼초 족소양담, 묘유양명조금 수양명대장 족양명위, 진술태양한수 수태양소장 족태양방광이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런 이치와 상통하였구나.

 

그가 이런 생각으로 잠시 딴전을 부리는 사이에도 운곡선생의 강좌는 계속 이어졌다.

 

“자미회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마음이 子회에서 未회로 흘러갔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子의 상태에서 未의 상태로 우주의 환경과 여건이 변화한다는 뜻입니다. 子는 만물의 양기가 시생하는 출발이라면, 未는 만물의 음기가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는 출발점이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간 우주의 기운은 만물의 외적인 형태를 드러내는 과정을 밟았다면, 미회에 이른 지금은 내적인 형태를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곧 세상이 온통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지내 오던 물질문명을 종식하고, 내면의 알곡, 영혼의 실세를 드러내는 정신과 물질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子는 만물의 씨앗을 심는 거라면, 未는 만물의 열매가 달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치를 알면 누구든지 허상인 물질을 벗어버리고, 그 속에 들어 있던 영혼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걸 가리켜 개벽이라고 하는데, 시천주는 바로 이런 원리와 방편을 일러주시는 분이며, 자미회로 오신 시천주의 탄강도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순간, 정도의 머리는 무언가 섬광이 번쩍이는 듯 했다.

그렇다!

분명 운곡선생의 말씀에는 무언가가 있다.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운곡선생을 통해서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잘 하면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자아완성에 도달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子未會는 선천 물질문명에서 형상의 시작을 알렸던 子가 내면에서 영혼의 결실을 맺기 위하여 11귀체를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변화요 조화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었다.

子는 숫자로 1이요, 未는 10이라고 하였으니 11귀체가 아닌가?

또한 子는 1양의 기운이요, 未는 1음의 기운이니까 팔괘에서 진괘와 손괘에 해당하지 않을까?

子는 水요 未는 비록 土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火가 강하므로 水火가 조화하는 형국이 아닌가? 水는 몸을 맑게하는 것이요, 火는 정신을 밝게 하는 것이므로 둘이 합한 자미회는 결국 몸과 마음의 온전한 화합을 가리키는 상징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어찌 개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