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진표율사 1

영부, 精山 2008. 1. 21. 08:24

식사는 항상 그렇듯이 공동취사장에서 하였다.

널따란 취사장을 보면서 정도는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일종계를 맡아서 취사장에서 지내느라고 그는 일조점호나 일석점호 같은 걸 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때는 아무런 걱정이 없이 그저 군무에만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그때에 정도는 사회에 나가서도 아무런 의식주 걱정이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천부동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였다.

마침 옆 자리에 새벽에 운곡선생께 질문을 하였던 안경 낀 여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인산으로 통한다고 하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천부동에서는 1주일 간 영부수련이라는 입도식을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 호를 받는다고 하였다.

호는 山으로 짓기 때문에 자신도 어질 仁자를 받아 인산으로 통한다고 하였다.

새벽에 정도 옆에 앉아 있던 키 큰 청년은 義山이라고 한다는 사실도 그녀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자신의 담당분에 관한 일을 한다고 하였다.

 인산은 그 곳에서 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하였다.

 일반 사회와는 달리 주로 천문 40자를 기본으로 한 학문을 위주로 공부를 가르치기 때문에 그 방향이 큰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정도도 전에 천부동을 방문했을 적에 들은 바가 있어서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천부동 학교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만 갔다.


 낮에도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천문 40자나 현무경에 대한 이야기, 천부동의 세세한 일상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전부 소개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만 강좌에서 언급 된 운곡선생의 말씀을 이어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하겠다.

다음 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강좌는 진행되었다.

정도 옆에는 어제처럼 의산이 자리를 잡았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미륵공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잊혀져가던 미륵신앙이 다시 민간에서 크게 회자(膾炙) 되기 시작한 것은 개벽주께서 미륵공사를 보신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제 대순전경에서 인용한 것처럼 김형렬의 집에서 1902 임인 년 추석에 행했던 공사였습니다. 미륵공사는 말 그대로 미륵불이 세상에 등장하는 것을 기념하는 공사라고 보면 됩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전설로만 전해오던 미륵불이 직접 사람의 몸으로 출현하는 공사라고 한다면 어마어마한 일대 사건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당시에 직접 그 공사에 참여하였던 김형렬을 위시한 종도들도 설마 그분이 진정한 미륵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아마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미륵이나 재림주가 등장할 적에는 구름을 타고 오던가, 아니면 커다란 나팔소리가 하늘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줄로 알고 있었을 겁니다.

 우선, 임인 1902년에 관한 것부터 알아보기로 합시다. 천지는 시공을 빚어서 인간들에게 그 뜻을 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륵불이 출현하는 시기를 안다는 건 매우 중대한 일입니다. 이에 대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진표율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표율사는 그 이름 자체가 眞表를 표시한다는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세상에 진짜 미륵이 출현하는 시기를 일러준 분으로 유명합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전해지는 것이 없지만, 신라 경덕왕(742~765 재위) 때에 왕에게 보살계를 전해주었으며, 김제 금산사, 속리산 길상사, 금강산 발연사를 창건하 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가 760 경자년에 변산 부사의방에 들어가 미륵불을 만나기를 소원하였지만, 효력이 없자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다음 생에 미륵을 보려고 하였지만, 바위 밑에서 청의동자가 그를 받아 올려 다시 정진할 것을 부탁하고 사라졌다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용기를 얻은 그가 다시 망신참법(亡身懺法 : 온 몸을 돌로 찧으며 수행하는 방법)으로 수행하기를  21일 만에 천안(天眼)이 환하게 열려 도솔천의 무리가 와서 예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때가 임인년이었는데, 그 후로 1,140년이 경과한 서기 1902 임인년 추석에 증산께서는 미륵불 공사를 보셨습니다. 진표율사가 부사의방(不思意房)에서 도솔천에서 미륵불이 하강하는 연대가 천 년 후가 될 것을 알았으며, 그것을 그대로 그린 것이 바로 지금의 금산사에 있는 벽화라고 합니다. 진표율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분의 행적에 관한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넘어갈까요?“

 

“네. 좋습니다. 대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