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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장과의 인연

영부, 精山 2008. 1. 22. 18:10

옥산장은 을축년(85년)에 월학선사님으로부터 법을 받았으니, 나보다는 8년 선배입니다.

솔직히 나는 옥산장이나 대산장과는 개인적으로 그리 친분이 있는 편은 아닙니다.

과거에 한, 두어번 전국 치성이 있을 적에 안면이 있을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 같은 월학선사의 문하생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저 동지라는 의식을 지닌 것 외에는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다.

풍문에 옥산장께서 부산에 거주하시면 직업은 이발사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대략 7, 8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옥산장께서 서울  신촌에 볼 일이 있어서 올라오셨다고 하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여 만난 적이 있었지요.

그 날의 만남이 금년 초까지 만남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2001 신사년 화천절에 옥산장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우편으로 받았는데, '참 동학의 실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오늘 그 책을 다시 보니 겉표지에 "천주님을 닮아 갑시다.  2001 신사년 갑사 4월 화천절에. 옥산이 왕정산께 드립니다"고 자필 서명을 곁들였군요.

그 책의 서문에서 옥산장은 4남 2녀 중에서 막내이고, 통일교에 다닌 형님도 있고, 무신론자 형님도 있으며, 불교 신자인 형님, 대한도덕회에 다니는 누님도 있는 등, 다양한 종교를 지닌 집안 내력의 소유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의 내용을 본즉, 기존의 '시천주 현무경'과 큰 차이가 없는 지라, 대충 한 번 훑어보고 서가에 꽂아 둔 채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죄송 ㅎㅎ)

그 후에 옥산장은 잊지 않을 만큼 전화를 주시더군요.

내가 나이 어린 데도 전화를 주시는 정성이 고마와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성의껏 대하려고 하였지요.

밥물 순회 강연을 하면서 부산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찾아 뵙는다고 하고서는 그러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찌나 죄송하던지 ...

 

그리고 작년 연말에 부쩍 통화가 많아졌습니다.

그건 내가 일기법에 의문을 품고, 부산에서는 5년 전부터 새로운 일기법을 시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라와 함께 부산을 방문 한 게 금년 초였고, 그 이후의 일은 이미 공개한 대로 입니다.

 

대산장과 옥산장으로 인해 부산에서는 월학선사의 가르침이 잘 못 되었다는 걸 진즉에 선포를 하였으며, 부산 도생들이 힘을 모아 미륵경전(현무경과 대순전경의 합본)을 2005년도에 발간하기도 하였더군요.

그리고 미륵경전 해설집을 이미 탈고한 상태인데, 내가 진리의 광장에 올린 글도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천부동과 합작으로 책을 발간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그간 부산 도생들이 얼마나 큰 시련과 박해를 받았는가 하는 것은, 그간 나의 경우를 보아도 능히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무조건, 덮어 놓고 월학선사의 가르침만이 절대라고 믿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고 하지만, 그릇 된 것을 보고도 눈 감는다는 건 맹종이요, 결코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월학선사의 일기법이 그릇 되었다고 그렇게 공표를 하였는데도, 그 문하생들은 개인적인 영웅심이나 과시욕에 의한 발로 정도로 치부하면서 아예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이 허허롭습니다.

내가 잘못 되었으면 당당히 지적을 하는 것도 아니요, 그런 부류들은 위험하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도 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승리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봤자 금방 다 알게 마련이지요.

이제 천부동 가족들이 하늘의 서광에 힘 입어 부산 선배들의 큰 가르침을 접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면서 이제는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용화세계를 건설하는 대열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곳에 옥산장의 글을 집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으니 많은 가르침과 지도편달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