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선생은 1902 임인년 8월 추석에 김형렬의 집에서 미륵불 공사를 본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경자 1,900년에 하늘이 열리고, 신축 1,901년에 땅이 열리며, 임인 1,902년에 인간이 일어서는 법칙에 의거하여 임인년에 미륵불공사를 보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하필이면 왜 추석에 그런 공사를 보게 된 것인지 정도는 궁금하였다.
“왜 추석에 공사를 보아야만 했습니까?”
“그해 추석은 기유월이고, 그날 일진은 임인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인지 … ”
“하다못해 밭에 씨앗을 뿌릴 적에도 때와 장소를 잘 골라야 하는 것처럼, 후천 5만 년을 열어야 하는 개벽주의 입장에서 시기를 잘못 택하면 도수에 맞지 않아서 아무 일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기유월은 선천 물질문명의 중도인 2양과 2음을 맡았던 戊寅, 戊申을 후천의 주인공에게 임무교대를 하는 상징입니다.”
정도는 도대체 운곡선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 을축, 병인 … 따위의 간지에 대한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듯한데, 정도는 자신 때문에 강좌가 진행이 막히는 것 같아서 미안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모르는 걸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오!
“물질문명의 중도란 말이 무엇이고, 2양과 2음은 또 무슨 말인지요? 임무교대라고 하는 것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운곡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산에게 칠판 앞에서 설명을 해보라고 하였다.
의산은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하였다.
“물질문명을 하루로 치면 태양을 위주로 하는 오전에 해당하고, 오후는 정신문명 즉, 후천이라고 합니다. 태양은 만물의 형상을 밝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이나 문화도 겉을 꾸미는 허례허식으로 치닫게 마련이고, 음이 주도하는 오후부터는 겉이 잘 안 보이므로 자연스럽게 내면을 돌아보는 정신문명으로 간다고 봅니다. 물질문명을 주도하는 12지지를 보면 子丑에서 1양이 나오고, 寅卯에서 2양이 나오며, 辰巳에서 3양으로 극성을 부리지요. 이처럼 3변을 하는 중간의 2양인 寅卯에서 물질문명은 태양과 지구의 중도를 달이 기준을 잡아준다고 하여 寅月로 歲首를 삼았던 겁니다. 그러나 후천에서는 午未 1음, 申酉 2음, 戌亥 3음이 주도를 하게 되는데, 그 중도에 해당하는 申酉를 사용하게 됩니다. 선천에서는 양을 위주로 하니까 寅月로 세수를 삼았지만, 후천에서는 음을 위주로 하니까 申과 酉 둘 중에서 酉를 세수로 삼게 되었다고 봅니다. 또한 선천은 겉의 형상을 위주로 하니까 천간도 역시 戊를 기준으로 하였지만, 후천에서는 내면을 중시하므로 음에 해당하는 己를 사용하게 되므로 己酉월에 미륵이 탄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의산이 설명을 마치자 ‘와!’하는 함성이 일었다.
운곡선생도 만면에 가득 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간 공부한 보람이 있군요. 의산은 천부동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죠?”
“약 6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정도가 보기에도 확실히 의산의 실력과 인품은 무언가 남달라 보였다.
자신도 저렇게 6개월 만에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정도는 의산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그러면서도 정도의 마음 한 구석에는 석연치 않는 게 있었다.
“의산님, 미안하지만 세수가 寅月이면 어떻고, 酉月로 되면 어떻다는 얘깁니까? 그냥 그런 건 세월이 흐르는 순서를 사람들이 편리하게 정해서 사용하는 건데, 그게 도대체 천지개벽이나 인간의 의식개혁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정도에게 쏠리는 것 같았다.
그런 것도 모르냐고 하는 것 같아서 정도는 창피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있었으나, 왠지 그런 질문을 하면 창피스러울 것 같아서 말을 안 하고 있었을 따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운곡선생은 매우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는 빙그레 웃음을 머금은 채 의산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건 지금의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