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지금의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데요. … ”
의산이 운곡선생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끝을 흐리자
“상관없습니다. 어느 것을 말하건 우리의 공부는 우주만물의 실상을 알고자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나요? 지금 질문한 내용은 익히 여러분들이 알고 있다고 믿지만, 여러분의 입으로 다시 확인한다는 것도 매우 뜻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의산님한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시다.”
운곡선생이 박수를 치자 모두가 힘찬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의산은 뒤통수를 긁적이는 듯하더니, 이내 우렁찬 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도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이 공부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천간과 지지, 팔괘, 숫자 등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건 왜 알아야 하느냐 하는 의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곤 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영어 열풍이 불어서 심지어 어린애 때부터 영어를 교육시키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데, 왜 천부동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지는 공부를 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회의론에 젖을 때도 많았습니다. 솔직히 천문 40자를 모른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뒤처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런 공부에 매달려야 하느냐 하는 생각을 여러분은 안 해 보셨나요?”
의산의 눈은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과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천부동에 직접 와서 생활하면서 저는 세상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천부동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평온과 진실이 있더군요.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찾고 있던 명예와 부귀, 쾌락보다 더한 것들을 이 조그만 마을에서 누리고 있다는 걸 알고는 놀람과 부러움 등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원동력이 저는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걸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천문 40자요, 현무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천문 40자를 공부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방금 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물론 선배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아직도 햇병아리 수준이겠지만, 정도씨의 지금 심정을 미리 고민해 본 입장인지라 감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도는 의산이 정말 말을 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설득력이 있었으며, 사람을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었다.
“처음에 제가 이 공부를 하면서 제일 납득하기 힘들었던 게 바로 연월일시라는 사주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각자의 사주가 있어서 그걸로 평생의 점을 치기도 하고, 흉액을 피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맨 처음 이 공부를 할 적에 혹시 이 공부를 해서 사주에 능통하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 거라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할 필요는 없을 텐데 …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요. 그러나 세수를 왜 선천에서는 寅月로 정했느냐는 운곡선생님의 물음에 말문이 콱 막히는 순간, 저는 그간 제가 알고 있던 사주에 관한 지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대학로에서 한 때는 잘 나가는 學士 역술가였는데 매일 사용하는 세수의 원리도 모르면서 남의 운명을 봐 주면서 아는 체를 했던 겁니다. 그래서 천지신명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반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운곡선생님의 지도를 받아가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1년을 왜 12개월로 구분하였으며, 하루도 역시 12시간으로 나누었는가 하는 걸 알고 나니, 천간과 지지의 차이점이 명료해지는 걸 알았습니다. 우주에는 음양이 있고, 음양은 태양과 달이라는 큰 별로 기준을 삼게 되었으며, 태양을 지구가 한 바퀴 도는 공전 360일에 달은 지구를 12번 돌기 때문에 1년 12개월이 생겼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여기에서 저는 1년을 하루로 축소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년에 12개월이 있는 것처럼, 하루에는 12시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루를 더 축소해서 본다면 1시간과 같다는 계산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1시간은 120分이라고 하지요? 120번 나누어진 것이 합하면 1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걸 보고 저는 왜 굳이 1시간을 120분으로 정하지 않으면 안 될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1시간을 100분이라고 할 수도 있고, 90분, 80분으로 정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120분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 생각에 몰두를 하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화두가 되더군요. 그리고 그 답을 알아냈습니다. 답은 너무도 간단하더군요. 시간이라는 것은 텅 빈 공간을 무언가가 움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되고, 공간을 수로 말한다면 당연히 0이니까 10이라고 할 수밖에요. 그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은 바로 천지인 3재가 중심인데, 3재의 움직임은 반드시 4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3 × 4 = 12가 됩니다. 12는 어쩔 수 없이 10으로 상징되는 공간과 조화를 하여야 하는 법이므로 10 × 12 = 120이란 계산이 나오더군요. 그때 저는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기초단위를 굳이 1分이라고 한 것은, 10 무극과 12 변화로 나누어진 것(分)이 만물의 실상임을 알리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10 무극은 10천간으로, 12변화는 12지지로 나타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나는 아! 이것이 바로 하늘과 땅을 안다는 얘기로구나! 하면서 나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왜 하늘은 10수가 되어야하고, 땅은 12수가 되어야 하는 가도 스스로 알 수 있었습니다. 10이나 12는 다 같이 음양이 있게 마련이므로 10천간은 甲丙戊庚壬이라는 5양과 乙丁己辛癸라는 5음으로 나누고, 12지지도 역시 子寅辰午申戌이라는 6양과 丑亥酉未巳卯라는 6음으로 나누어졌습니다. 6양도 3변하고, 6음도 3변하는 것이 자연의 철칙이므로 6양은 자축 1변, 인묘 2변, 진사 3변하고, 6음도 오미 1변, 신유 2변, 술해 3변하게 마련입니다. 양이 1변하면 1양이 시생하는데 이때의 양은 아직 미약하므로 만물의 형상을 밝게 드러내지 못하고 다만 양의 기운만 일어나는데 그것을 가리켜 子라고 하여 시간의 첫 머리인 時頭 즉, 子時로 삼았던 겁니다. 1양이 더 자라 2변을 하게 되면 2양이 되어 1양과 3양의 중도를 이루게 되는데, 이걸 가리켜 12달의 첫 머리인 歲首 즉, 寅月이라고 했습니다. 양이 3변하면 3양인 辰이 되는데, 이것은 곧 한 해가 충만한 상태라고 하여 太歲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양을 위주로 한 물질문명, 즉 눈에 보이는 걸 위주로 의식이 벌어진 세상에서 본 것이기에 내면의 정신을 위주로 하는 후천이 오면 당연히 우주와 인간의 의식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상적인 변화는 음양의 조화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물을 가리키는 子時는 불을 가리키는 巳와 합하여 물과 불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에 후천의 시두는 巳時라고 하며, 세수도 역시 물과 불의 기운을 한데 모아 중도를 이루었던 木을 가리키는 寅月 대신, 목과 상극인 金을 가리키는 酉와 합하여야 하므로 酉月로 세수를 삼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선천의 세수나 시두는 자연의 물질적인 면, 즉 형상의 겉면을 중시하는 상징이라면, 후천의 세수나 시두는 자연 즉, 천지와 인간의 내면이 하나 된 자성의 상태와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