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이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 들어가자 장내에는 요란한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일었다.
정도도 맘속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자상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그의 말솜씨에 운곡선생도 흐뭇한 모양이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제 점점 내 어깨가 가벼워지는 걸 느낍니다. 이 천부동을 설립하고 고생한 보람을 느끼는 아침입니다. 이 삭막하고 갑갑한 세상을 시원하게 뚫어줄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나는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의산 뿐 아니라, 여러분들도 얼마든지 멋진 강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냥 살아 있는 영혼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날 아침의 강좌는 이렇게 감사와 환호로 마쳤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정도는 의산의 옆에 앉게 되었다.
누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닌데 인산도 어느 새 앞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새벽의 일로 인하여 의산은 단연 인기스타가 되어 있었다.
“새벽에 좋은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뭘요, 부끄럽네요.”
인산과 의산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닙니다. 아까는 정말 나도 감동을 먹었습니다.”
정도도 그들의 말에 끼어들었다.
“덕분에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잘 이해가 안 되는 건, 60갑자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10천간과 12지지를 맞물려 가면 60개가 나온다는 건 상식적인 일인데, 솔직히 왜 그런 걸 알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런 걸 전혀 모르지만 동양보다 오히려 더 진보된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거든요.”
“서양이 동양보다 더 진보된 문명을 누리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인터넷만 해도 서양에서 나온 기술입니다. 특히 미국은 세계의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애들부터 어른까지 온통 영어를 배우겠다는 열풍이 우리 주위에도 거세게 불어 닥쳤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동양이 더 앞선 문명을 누리게 된다고 나는 봅니다. 과학이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분명 그들이 우리를 더 앞섰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도덕적인 전통과 미풍양속이 있습니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우리의 주체성을 잃지 않을 때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이 모든 면에서 우리 보다 더 낫다고 보는 건 착각입니다.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 우리에게는 있다고 믿습니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과감하게 버리던지, 수정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서양인들의 과학은 우리의 전통적인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활용을 할 때에 비로소 온전한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그의 말은 논리가 정연하였다.
입속에 밥을 집어넣으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정신문화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무얼 가리키나요?”
“그게 바로 우리가 요즘 공부하고 있는 천문 40자가 아닌가요?”
인산이 잠시 수저를 내려놓으면서 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