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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갑자

영부, 精山 2008. 1. 31. 04:55

인산이 잠시 수저를 내려놓으면서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는 각인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게 어느 정도는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고는 있지만, 과연 서양의 문물을 능가할 수 있는 안내자가 되겠느냐 하는 건 솔직히 의문입니다.”

 

정도도 이왕 말을 꺼낸 김에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좋을 듯하였다.

인산과 의산은 서로 잠시 얼굴을 마주치면서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인산이 입을 열었다.

 

“한 달 전인가? 지금과 똑같은 주제로 우리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지요. 어쩌면 오늘의 이야기와 그렇게도 같은 지 신기하군요. 그때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이 되었거든요. 아마 그걸 소개하는 게 효율적일 거라는 느낌이에요. 우리에게는 분명 서양인들이 도저히 따라오지 못할 정신적인 자산인 천문 40자가 있었지요.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서양은 감히 동양에 명함도 내밀 수 없을 정도로 문명의 차이가 벌어졌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인류의 4대 문명의 발상지를 찾아보아도 중국의 황하문명, 인더스강과 갠지스강의 인도문명, 나일강의 이집트문명,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은 모두 서양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한 번 보세요. 특히 서양문명의 시조라고도 일컬어지는 수메르인들은 동방에서 왔다는 건 이미 역사학계의 정설로 굳혀진지 오래이거든요. 일설에는 수메르가 우리 9환족의 하나인 ‘수밀이’였다는 학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처럼 위대한 문명을 이룬 바탕에는 수리학과 천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게 바로 천문 40자였거든요. 그걸 이어 받은 서양인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물질문명을 만들어 놓았던 거죠. 하지만 서구의 그것은 천문 40자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정신을 잃어버린 채,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오늘날처럼 비록 화려한 과학문명을 이루기는 하였지만 인간성의 파괴나 도덕성의 결여 등 많은 문제점을 낳게 되었지요. 암튼 우리들이 그날 내린 결론은 서구의 물질문명과 동양의 정신문명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면 인류는 이상적인 문명을 도출할 수 있다는 거였죠.”

 

“그 얘기를 뒤집어 말한다면 천문 40자는 과학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을 동시에 만족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우리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천부동에 온 것이고, 새벽마다 하는 공부는 아주 중요한 행사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또래들의 눈을 한 번 보세요. 아마 일반 사회의 학생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을 텐데요.”

 

그건 그랬다. 그러기에 정도도 모든 걸 다 젖혀 놓고 이곳으로 오지 않았던가?

 

“구체적으로 그게 실감이 나야 하는데, 나는 아직 그렇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새벽에도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을 했던 겁니다.”


“실례라뇨? 우리 모두는 그런 질문이 많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구체적으로 간지에 관한 언급을 부연할 필요가 있겠군요. 예를 들면 육갑 떤다고 할 때의 갑자, 갑인, 갑진, 갑오, 갑술, 갑신은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겁니다. 甲은 흔히 방위로는 東方이요 오행으로는 木이라는 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육갑은 모두 동방이나 木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지요. 갑자는 새벽에 공부 한 것처럼 동방에서 벌어지는 1양의 상태요, 갑인은 2양의 상태이고, 갑진은 3양의 상태이며, 갑오는 1음의 상태요, 갑신은 2음, 갑술은 3음의 상태라고 보면 되겠죠. 그러니까 갑자보다는 갑인이 더 밝고 기가 강하다고 볼 수 있고, 갑진은 가장 밝고 강한 상태이며, 갑오는 양이 다하면 음이 나오는 것처럼 서서히 음의 기운이 시생하는 상태를 가리키고, 갑신은 음이 더 강해지 상태요, 갑술은 음이 3음으로 다 자라서 어둠이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동방에는 갑만 있는 게 아니라, 乙이라는 천간도 있거든요. 그래서 갑자가 동방의 1양이라면 을축도 동방의 1양이라고 합니다. 갑자와 을축은 동방의 1양이요, 병인과 정묘는 남방의 2양이며, 무진과 기사는 중앙의 3양이며, 경오와 신미는 서방의 1음이요, 임신과 계유는 북방의 2음이며, 갑술과 을해는 동방의 3음을 가리킵니다. 이걸 도표로 그린 게 마침 여기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