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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갑자

영부, 精山 2008. 2. 1. 05:47

인산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서 식탁 위에 펼쳐 놓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동방

남방

중앙

서방

북방

1변

1갑자, 2을축

13병자, 14정축

25무자, 26기축

37경자, 38신축

49임자, 50계축

2변

51갑인, 52을묘

3병인, 4정묘

15무인, 16기묘

27경인, 27신묘

39임인, 40계묘

3변

41갑진, 42을사

53병진, 54정사

5무진, 6기사

17경진, 18신사

29임진, 30계사

1변

31갑오, 32을미

43병오, 44정미

55무오, 56기미

7경오, 8신미

19임오, 20계미

2변

21갑신, 22을유

33병신, 34정유

45무신, 46기유

57경신, 58신유

9임신, 10계유

3변

11갑술, 12을해

23병술, 24정해

35무술, 36기해

47경술, 48기해

59임술, 60계해


“여기 붙은 번호는 무언가요?”

 

“그건 60갑자의 순서를 매긴 겁니다. 그냥 외우는 것보다 이렇게 번호를 붙여서 외워 놓으면 여러모로 편리하거든요.”

 

정도는 후일, 그렇게 외워두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지 알게 되지만, 당시에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렇게 공부하는 요령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알았다.

인산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동방에서 1양이 시생하는 것은 갑자와 을축이 있지요. 갑자는 양을 기준으로 본 것이고, 을축은 음을 기준으로 본 것이죠. 갑과 을은 다 같이 동방과 목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갑은 양이요, 을은 음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해요. 이걸 甲天, 을天이라고도 부르지요. 이런 식으로 보면 남방에는 丙陽天, 丁陰天이 있고, 중앙에는 戊陽天,  己陰天이 있으며, 서방에는 庚陽天과 辛陰天이 있고, 북방에는 壬陽天과 癸陰天이 있다고 볼 수 있으니 도합 10천인 셈이죠. 막연하게 하늘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매우 체계적이면서도 치밀한 하늘을 얘기해 놓았는데, 우리가 미처 그걸 모르고 있을 따름이죠. 이런 건 서양의 sky로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의식의 차이, 상상력의 차이를 가져오게 마련이지요. 지금 노벨문학상이 한국인에게는 아직 한 사람도 주어지지 않고 있는데, 그건 한국인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서구인의 의식수준이나 표현능력으로는 도저히 한국인의 문장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정도는 그토록 어려 보이는 여성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였다.

 

물론 정도도 어느 정도 그런 말들을 듣고 본 적이 있긴 하였지만, 하늘이 열 가지로 분류된다는 것은 처음이었다.

 

“불교에서 삼천대천세계라고 한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10천이란 표현은 오늘 처음이군요. 그런데 그 십천은 어떻게 각각 다른가요?”

 

“십천은 10천간을 가리키는 겁니다. 甲天과 乙天은 같은 東天을 가리키는데, 태양 볕을 받아 반짝이는 부분을 갑천이라 하고, 그 바탕을 이루는 공간을 을천이라고 보면 되겠죠. 丙天과 丁天도 역시 태양 볕으로 열을 받은 곳은 병이요, 그 바탕을 이루는 공간은 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나머지도 유추할 수 있겠지요.”

 

“다른 건 그럭저럭 이해가 되지만, 북방의 壬天과 癸天은 잘 납득이 안 가네요. 북 방은 아예 태양 볕이 없는데 어떻게 구분을 하나요?”

 

“북방이라고 해서 어둠만 있는 게 아니지요. 물론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엄연히 그곳에도 음양이 있게 마련입니다. 미약하나마 그곳에도 양기가 비치는 곳이 있는데, 그걸 壬天이라 하고, 그 바탕을 癸天이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壬을 가리켜 숫자로 1이라 하고 오행으로는 수라고 하는데 보통 둘을 합해서 1水라고 부릅니다. 癸는 10천 중에서 가장 어두운 하늘, 즉 근원적인 허공을 가리키기 때문에 6수라고 합니다.”

 

“6이 그럼 가장 어둡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壬이 1양이라고 하면 1양은 동지에서 시생한다고 하지요? 1과 6은 보통 1, 6수라고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6이라는 동지에서 1양이 시생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6을 동지라고도 하고 팔괘로는 음이 극성한 곤괘라고도 하는 겁니다.”

 

팔괘 이야기까지 나오자 정도는 머리가 복잡해 졌다. 그래서 그는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갑자와 을축은 다 같이 동방의 1양을 가리키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런 이야기까지 하려면 천간 말고도 지지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해야 하는데 …”

 

인산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 새 식당에는 세 사람만 남아 있었다.

벌써 각자 일하러 갈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아쉽지만 그들은 식당에서 나왔다.

정도는 아직 일자리가 정해진 것이 없는 지라, 천부동 이곳, 저곳을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천부동의 규칙이 누구든 1개 월 가량은 맘대로 천부동에서 살아 본 후에, 정식으로 한 식구가 되도록 한다고 하였다.

그 기간 중에 다른 마음이 생기면 언제라도 귀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최대한 천부동에 입주하는 걸 신중하게 하라는 배려인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