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는 운곡선생의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곡선생은 마침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운곡선생은 앞에 있는 야산에 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정도가 함께 동행을 해도 괜찮으냐고 했더니 운곡선생은 흔쾌히 허락을 하였다.
“선생님. 아침에 의산님, 인산님과 더불어 잠깐 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느 정도 그분들의 견해를 들으니까 간지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 필연적으로 알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백 퍼센트 와 닿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간지는 왜 공부해야만 하는 건가요? 솔직히 예수나 석가 같은 성인들은 그런 걸 가르치지는 않았거든요.”
운곡선생은 잠시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네, 저 하늘이 무슨 색으로 보이지?”
“그야 푸른색이죠.”
“왜 저런 색을 가리켜 푸르다고 했을까?”
“그건 … 하늘에 水氣가 있는데, 그것이 햇빛에 반사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배웠습니다.”
“그건 과학적인 견해에서 나온 말이고, 直觀에서 나온 지혜로 보면 하늘은 갑갑하게 묶여 있던 것들을 모두 ‘푸르게’하기 때문일세. 푸르다는 말은 묶인 걸 풀러버린다는 말과 같은 걸세.”
그러고 보니 우리말은 매우 재미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우리말은 하나하나가 모두 하늘 말이지. 그런 건 아마 천부동에서 있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걸세. ‘검다‘라는 말도 가물가물하다, 거뭇거뭇하다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무언가 속이 잘 안 보이는 경우를 가리킨 걸세. ’붉다’는 ‘밝다‘에서 온 것이요, ’희다’는 희소(稀少)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드물다‘에서 온 것이고, ‘누런색’은 ‘눌린 상태’를 가리키지.”
정도는 왜 갑자기 운곡선생이 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했다.
“갑자기 내가 5색에 대한 언급을 하니까 이상한 모양이군. 자네가 간지의 가치에 대한 걸 물었으니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는 중일세. 만물은 空과 色으로 되어 있는데, 하늘은 공이요, 땅은 색에 해당하네. 인간은 이 둘을 한데 모으기도 하고, 흩어지게도 하면서 격에 맞게 활용을 하고 있지. 공은 본래 무형이기에 그 실상을 알기가 매우 어렵지.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반조하여서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였네. 공이 자신의 모습을 반사한 것을 가리켜 색이라고 부르는 걸세. 그러니까 색을 보면 공도 자연히 알게 된다는 말일세. 공을 가리키는 색을 가리키는 도구가 바로 천간이요, 색이 변화하는 상태를 가리킨 도구가 지지라고 하는 걸세.”
공과 색이라면 정도는 불교의 교리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운곡선생은 그것을 간지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정도에게는 이채로웠다.
“그래서 5색이라는 용어가 나온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