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하나님 아버지가 된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죠.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났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들이 자라면 아버지가 되는 건 상식 아닌가요?”
정도의 머리에는 불현듯 며칠 전 운곡선생의 강론이 되살아났다.
그때 운곡선생은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곳이라도 통달한다고 하였으니, 진리의 영만 제대로 갖추기만 하면 누구나 하느님의 깊은 곳 까지 다 통할 수 있다고 하면서, 예수가 다시 오리라고 했던 까닭도 실은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입장으로 오신다는 얘기이고, 선천의 성인들과 후천의 개벽주의 차이점은 바로 이런 데에 있다고 하였던 말을 하였었다.
의산의 말은 그걸 더욱 확고하게 받침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인간이 하나님 아버지가 된다고 하면 기독교에서는 이단 중의 이단이라고 할 텐데요. 감히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 아버지가 된다고 하면 오만의 극치라고 할 텐데요?‘
“그건 하나님을 잘 못 이해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나 그들이 말하는 피조물이나 우주라는 한 공간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바다라는 한 그릇 안에 모든 물이 모인 것과 같지요.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과 육체가 모여 거대한 하나님을 형성하고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르고 있지요. 하나님이 하나라고 해서 마치 인간과 따로 존재하면서 인간을 만들어낸 존재로 인식한다면 그건 마치 바다가 따로 있으면서 바닷물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한 개이건, 두 개이건 그 모든 게 서로 상통하여 질적으로도 그렇고, 양적으로도 그렇고 모두가 하나라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걸 가리켜 個全雙全이라고 했습니다.”
정도도 물론 기독교의 창조론을 믿은 건 아니었지만, 의산의 말을 듣고 보니 분명, 천부동에서는 성경적으로도 이미 정리가 다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아까도 말을 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그날과 그때는 아버지만 안다고 한 것도 그걸 알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따로 있다는 말이 아니었나요?”
“운곡선생님이 뭐라고 했나요?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깊은 곳이라도 통달한다고 성경에 기록 하지 않았느냐고 했지요?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하였으니, 누구든지 진리의 영으로 무장을 하기만 하면 어떤 것이라도 다 알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어 낸 것도 진리의 영으로 한 것이요, 세상사가 돌아가는 이치도 모두 진리의 영에 의한 겁니다.”
“그냥 진리라고 하지 않고, 진리의 영이라고 하니까 신비한 어떤 영물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 존재는 없다는 말인가요? 있다는 말인가요?”
“굳이 영이라고 하는 까닭은 상대적인 육과 구별하려는 의도라고 보아야겠지요. 진리의 영은 주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무형적인 것인데, 어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무형이기에 항상 어느 곳이건 존재합니다. 유형은 일정한 형체를 띠기 때문에 반드시 일정한 시공에 갇히게 마련이지만, 무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의 영을 예수는 아버지에게서 받아서 너희에게 보내준다고 했던 겁니다. 그게 없으면 사실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진리의 영을 아버지에게서 받아서 너희에게 보내준다‘고 한 문자적인 표현에 있었지요. 그러니까 마치 특정한 신이 따로 있고, 그분에게서 그걸 받아서 보내주는 걸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예수가 말하려고 한 것은, 누구든지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육을 죽이면 온전한 아버지, 즉 승리자가 되어 자유로운 진리의 영을 누리게 된다는 취지였거든요. 하나님 아버지가 따로 어디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진리를, 십자가의 승리를 얻기만 하면 아버지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된다, 즉 누구나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걸 말하려고 한 겁니다. 예수는 본래 아버지의 본체였지만 자신을 낮추어 육을 죽이는 십자가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들의 신분에서 아버지의 신분으로 승화하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