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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꼬리와 햇머리

영부, 精山 2008. 2. 16. 07:41

인산이 고개를 갸웃한 채 말을 꺼냈다.  

 

“공전은 여럿이 함께 어울린 것이니 외형을 중시할 수밖에 없지만, 자전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니 내면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내 말의 초점은 선천 물질세상에서는 보이는 외형을 중시하다 보니 辰으로 태세를 삼았던 것이요, 후천 정신세상에서는 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반대로 서방의 물질을 가리키는 西에 一태극을 집어넣는다는 의미가 있는 酉를 후천의 세수로 삼게 되었다는 걸 암시하기 위한 것이 바로 기유 8월 추석의 미륵불 공사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西에 一을 집어넣은 글자가 酉라는 사실이 정도는 신기했다.

어찌 보면 억지로 짜 맞추는 말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다.

하긴 짜 맞추려고 아무리 해도 그걸 보는 능력이 없다면 할 수도 없을 터이다.

인산은 그런대로 이해가 되는지 그냥 다소곳하였다.

아무튼 정도가 듣기에는 운곡선생이 중점적으로 하고 싶은 요지는, 증산이란 인물이 태어난 시기나, 미륵불 공사를 보는 시기 등은 모두 천지의 도수를 그대로 적용한 것이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인 듯 했다.

 

“기유 추석에 형렬씨 집에서 솥이 들썩이는 걸 보니 미륵불이 출세하려함이라고 하시면서 쇠꼬리를 구하여 불에 두어 번 둘러 낸 뒤에 햇머리가 둘려 있는지 확인해 보라 하면서 천하대세가 큰 종기를 앓고 있기에 그걸 없앴노라고 하였다는 건 기억하고 있겠지요? 여기서 솥이 들썩이는 것을 보고 왜 미륵불이 출세한다고 하였을까요? 오늘이 8일이니까 8번 덕산이 대답을 해보세요.”

 

정도는 6번이었고, 그 옆에 의산이 7번이었다.

 덕산은 학생들 중에서 약간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였는데, 평소에도 별로 말이 없는 편이었다.

 

“솥은 음식물을 익히는 기구니까 물질적인 복록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물질은 땅에 속하였으니 地軸을 가리키는 辰戌丑未가 들썩인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선천은 辰戌이 무진태세와 무술일진으로 물질문명의 축을 이루었으니, 후천에는 丑과 未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丑은 소인데, 시작은 子에서 하니 子가 머리요, 寅에서 끝이 나니 꼬리는 寅이라고 보아야겠군요. 선천의 寅이 있던 곳으로 용담도에는 未가 들어가는데, 쇠머리 子인 巳火와 몸통인 丑의 午火를 두 번 통과한 후에 未가 후천의 태세로 자리를 잡게 되니까, 당연히 쇠꼬리를 불에 두어 번 둘러내는 셈입니다.”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솥과 쇠꼬리가 평범한 아주머니인줄로만 알았던 덕산의 입에서 저토록 심오한 해석이 나온다는 사실에 정도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천부동 사람들은 그 지혜가 어느 수준에 도달한 것일까?

 

“그럼, 햇머리가 둘려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운곡선생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덕산에게 질문을 하였다.

 

“햇머리를 한자로 쓰면 歲首입니다. 선천의 세수였던 寅 자리에 巳午의 밝은 빛이 둘려있다는 의미이니까 선천의 세수가 떴던 곳으로 후천의 태세가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덕산의 해설은 정도가 듣기에도 명쾌하였다.

운곡선생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흐뭇한 표정이었다.

 

“천하대세가 큰 종기를 앓고 있다는 것은 無道라는 암덩어리를 가리킨 것이요, 무도는 곧 음양의 부조화를 가리킨 것이지요. 선천 양 위주의 세상에서는 억음존양의 기운에 의해 어쩔 수 없었지만, 후천에서는 음양이 온전히 조화를 이루어 공전과 자전이 일치하고, 음과 양이 일치하기 때문에 종기가 없어지지요. 그런 이치를 일러주시는 분을 가리켜 미륵불이라고 한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런 이치를 모르면서 어찌 임인년 기유 8월 임인일에 이런 공사를 볼 수 있단 말인가요? 천지는 말이 없으나 시공을 지어 놓고 간다는 말이 있지요? 그걸 제대로 보는 눈을 가진 자가 진정한 覺者요, 각 종교에서 학수고대하는 재림주요, 미륵불이며, 정도령입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증산을 선천의 성인과 같은 수준이나 차원으로 본다든가,  또는 미치광이, 강삿갓, 교주 등으로 보아서는 곤란하겠지요. 그나저나 덕산은 오늘 내가 질문을 안 했으면 서운했겠는데.”

 

덕산은 대답 대신 흰 이를 살포시 드러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