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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와 하나님

영부, 精山 2008. 2. 25. 08:55

“기왕 맞는 거 오늘 현산 한테 흠씬 두들겨 맞아야겠군. 현산 낭자, 이 문구의 뜻이 뭔가요?”

 

운곡선생은 약간 콧소리를 내면서 현산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 속에 천주님을 모시고 조화를 정하며 영세토록 만사를 잊지 않고 알게 하사이당”

 

역시 간드러진 대답이 흘러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천주님을 구체적으로 말해보사이다”

 

다시 운곡선생의 鼻音이 흘러나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마 대답이 궁한 모양이었다.

“ … 더 이상 캐물으면 다친다고 아뢰어랑”

 

다시 한 번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방 안에서는 웃음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천주에도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陽天主와 陰天主라고 할 수 있겠죠. 천주님이 두 분이라는 말이 아니라, 양을 위주로 하면 양천주요, 음을 위주로 하면 음천주라고 부릅니다. 그건 마치 성경에 하나님은 아들과 아버지로 나눈 것과 같습니다. 선천의 양천주는 壬子를 가리키고, 음천주는 癸巳를 가리킨 겁니다.“

 

정도로서는 처음으로 들어보는 생소한 것이지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주님이라고 하면 대개의 경우, 천주교에서 믿는 천주를 가리키는 걸로 인식을 하겠지만, 동학에서도 천주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동학이 이조시대에 탄압을 받은 이유 중의 하나가 있다면 바로 천주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천주교의 아류로 오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독교의 천주와 동학의 천주는 전혀 다른 개념을 지니고 있지요. 기독교는 창조의 주체자를 가리키는데 비해, 동학의 천주는 개벽의 주체자를 가리킵니다. 창조의 주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원적인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개벽의 주체는 음양의 절대합일에서 출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동학에서는 敬天, 敬物, 敬人이라는 三敬思想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창조주와 인간을 감히 동격으로 공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不敬이라고 합니다. 여하튼,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천주님은 개벽주를 가리킵니다. 개벽의 출발을 여는 건 바로 시간과 공간입니다. 개벽주는 물론 형상이 없지만, 시공을 통하여 자신의 형상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개벽주의 모습은 시공을 상징하는 간지로 나타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간결하면서도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군요.”

 

개벽주, 즉 하나님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간지라니?

정도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사주를 보는 사람들은 매일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 , 과연 그런 심정을 지닌 역술인이 몇이나 될까?

 

“壬子는 개벽주가 자신의 모습을 형상적인 면에서 나타내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壬이라는 공간 속에서 子라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첫 번째로 알린다고 하면 될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지, 결코 어느 한 부분에서만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도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