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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과 음양

영부, 精山 2008. 3. 2. 08:35

첫 날의 성경 기록을 전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기록에 의하면 첫날부터 주야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구절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궁창에 두어 땅에 비치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이것은 넷째 날의 기록인데, 넷째 날에 해와 달을 만들어서 주야를 구분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첫째 날에는 해와 달이 없었다는 말인데, 도대체 어떻게 주야를 구분하였을까?

태양이 없었는데 빛이 어디에 있었단 말일까?

그리고 첫째 날에는 궁창도 없었다.

궁창은 둘째 날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궁창이 없이 어떻게 주야를 구분한단 말인가?

 

이것을 물리적인 자연현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자체가 무리다.

왜냐하면 성경은 물리학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기록한 거룩한 글이기 때문이다.

빛과 어두움이 인간의 의식에서 벌어지는 영적인 현상을 가리킨 것처럼, 주야도 마찬가지다.

빛은 양이요, 어두움은 음이다.

양이 주관하는 세상을 가리켜 낮이라 하고, 음이 주관하는 세상을 가리켜 밤이라 한다.

그러나 음양을 주관하는 것은 해와 달이다.

해와 달이 없으면 음양도 없다.

그런데도 성경에서는 마치 해와 달이 있기 전에도 음양이 있는 것처럼 기록을 했으니 이는 무슨 까닭일까?

그답은 간단하다.

태양이나 달도 역시 음양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태양이나 달이 없다고 하여 음양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태양을 통하여 양기가 발산되고 모든 만물의 형상이 밝게 드러나지만, 태양이 없다고 하여 양이 없는 건 아니다.

달도 마찬가지다.

달은 밤을 주관하지만, 달이 없다고 하여 음이 없는 건 아니다.

음과 양은 태양과 달을 비롯한 모든 만물의 기본 바탕이다.

 

그러므로 첫날의 어두움과 빛은 각기 음과 양을 가리킨다.

음양은 만물은 물론 인간의 의식에도 기본적인 것이다.

 

첫날에 빛을 만들기 전에 이미 어둠이 깊었다고 한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곧 음에서 양이 나왔다는 말이다.

본래 음과 양은 한 몸을 이루고 있지만, 항상 음을 먼저 말하고 양을 나중에 말한다.

음양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양음이라고 하는 말은 생소하다.

그만큼 음에서 양이 드러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것은 곧 음은 체요, 양은 용이라는 의미다.

 

만물은 체용으로 이루어지는데, 체는 몸뚱이요, 용은 그 안에서 움직이는 변화를 가리킨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첫날의 빛과 어두움은 가장 기본적인 사물의 바탕인 음양을 가리킨다는 걸 알 수있다.

음양에 눈을 뜨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이란 용어 자체가 '음양이 하나 된 님'을 의미한다.

정확히는 음과 양, 그리고 시중(時中)까지 합한 셋이 하나님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우리'라고 표현하였다.

그 유명한 삼위일체는 바로 이런 데에 기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