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강유설(四象剛柔說)을 보면 건괘는 서(暑), 태괘는 한(寒), 이괘는 주(晝), 진괘는 야(夜)를 가리킨다고 한다.
한서는 사시사철의 기후를 구분하는 것이요, 주야는 하루의 기후를 구분하는 것이다.
사철에도 주야는 있으며, 하루에도 사철의 기운이 배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구분을 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창세 첫 날의 '빛'과 넷째 날의 '일월성신'도 그렇게 구분할 수밖에 없다.
사시사철의 한서는 보다 폭이 넓은데 반해, 하루의 주야는 좁다.
첫날의 빛은 아직 세분화 하기 전의 진리의 빛을 가리킨다면, 넷째 날의 일월성신은 사상으로 세분화된 의식의 체계를 상징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창세의 과정을 유의해서 살펴보면,
첫 날은 빛을 만들고, 둘째 날은 궁창을 만들어서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었다.
셋째 날은 땅과 바다를 드러나게 하고, 땅에서 씨 가진 풀과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들었고, 넷째 날은 일월성신을 만들었다.
다섯째 날은 물고기와 공중에 나는 새를 만들고, 여섯째 날은 짐승과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은 하나님이 안식을 취했다고 하는 게 창세의 전부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의식에서 벌어지는 깨달음의 과정을 상징한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 밝힌 그대로다.
첫 날의 빛은 깨달음에 접한 최초의 상태, 즉 하나님의 말씀이 최초로 들리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 말씀은 바로 '빛이 있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진정으로 진리의 말씀이 비추어 지기를 갈망하는 순간에 그 음성은 장엄하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물'이다.
첫 날 이전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서 운행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둘째 날에 궁창 위의 물과 아래 물로 나누었으며, 셋째 날에는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바다가 생기게 하고, 땅이 드러나게 하였다.
그러니까 물 속에서 궁창이 나오고, 바다와 땅도 나왔다는 말이 된다.
바다는 궁창 아래의 물이 한데 모인 것이요, 궁창 위의 물까지 가리킨 건 아니다.
궁창 위의 물은 나중에 노아 시절에 홍수를 발생하게 된다.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물에 대한 의미만 알아보기로 한다.
성경에 기록한 물은 물리적인 물이 아니다.
그것도 역시 영적인 물이라고 해야 하는데, 형상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을 가리킨다.
형상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있으면, 형상에서 벗어나는 원동력도 있다.
온갖 사물은 표면의 형상과 내면의 본성으로 구성된다.
진리로 들어가는 것도 동일하게 마련이어서, 형상적인 면과 본성으로 크게 대별한다.
형상적인 면은 진리의 겉면을 가리키고, 본성은 진리의 내면을 가리킨다.
인체도 겉의 피부는 차갑지만, 속의 오장은 덥다.
차가운 것은 물의 속성이요, 더운 것은 불의 속성이다.
이는 곧 모든 만물이 물과 불이라는 기본 요소를 띠고 있다는 증거다.
물과 불! 이 두가지는 우주의 기본 음양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성경에서는 '물 세례'와 '불 세례'를 주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