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물은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물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물을 통해서 물과 연관되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그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이 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 계시록 17장 15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 계시록 12장 13절 - 17절”
위 구절에서 보는 것처럼,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을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음녀(淫女)는 타락한 간음녀를 가리킨다.
간음녀와 대조적인 것이 바로 동정녀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세상과 간음한 몸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육신적인 처녀를 가리킨 게 아니다.
뱀(에덴동산에서 사람을 유혹한 뱀, 뱀이 자라면 용이 된다)이 여인을 삼키려고 토한 물은 세상의 무리와 백성, 열국과 방언이다.
이 여인은 남자를 낳았다고 하였는데, 이 남자는 곧 예수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여인은 동정녀를 가리킨다.
세상의 많은 무리와 열국, 방언은 세속적인 욕망과 탐욕에 물든 인간군상들을 가리킨다.
이런 것으로 여인을 타락하게 하려고 하였지만, 그 여인은 세 때 반을 피한다고 하였다.
세때 반은 다른 기록에 의하면 42개월이라고 하였으니, 3년 반을 가리킨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증거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 계시록 11장 1절 - 5절”
42개월은 1,260일이며, 세 때 반이다.
이것은 낙서 기간인 4,200년과 같은 의미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계시록 편에서 해야 할 것이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만 물에 대한 것만 언급하기로 한다.
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물은 무리와 열국, 방언을 가리킨다.
무리와 열국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며, 방언은 각기 그들 나름대로의 말씀을 가리킨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물은 말씀과 그 말씀을 좇는 무리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무수한 말씀과 그를 좇는 무리들이 있다. 그것이 뒤죽박죽 혼돈 된 상태를 가리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진리의 말씀이 혼돈한 터 위에서 밤과 낮을 구분하는 ‘빛’이 나타났으니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빛, 예수의 얼굴에 있는 영광의 빛’이라고 한다.
첫날의 빛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둘째 날의 물은 윗물과 아랫물로 나누어져 궁창을 드러나게 하였다.
이것은 무질서한 상태에서 진리의 빛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인간의 의식 상태가 하늘의 말씀과 땅의 말씀으로 또렷하게 구분을 한다는 의미다.
윗물은 하늘의 물이요, 아랫물은 땅의 물이다.
하늘의 물은 하늘의 말씀이며, 땅의 물은 땅의 말씀이다.
이렇게 나누어지면 비로소 궁창이 드러난다.
궁창(穹蒼)은 ‘푸른 하늘’이다.
태초에 생긴 천지는 궁창이 아니라,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푸른 하늘’이라고 할 수는 없다.
푸른 하늘은 빛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상태다.
같은 하늘이라도 빛이 없는 밤하늘은 푸른 하늘이 아니다.
따라서 궁창이 드러난 상태는 깊은 밤을 벗어나 새벽이 시작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반드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 째 날이니라’는 식으로 기록을 하였다.
어둠 속에서 빛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둘째 날에는 궁창만 드러난 것이 아니라, 땅도 드러난다.
다시 말하자면 윗물과 아랫물로 확연하게 구분이 되면, 천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하늘 말씀과 땅의 말씀을 먼저 인식할 수 있어야 비로소 천지가 바로 보인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별을 못하기 때문에 혼돈하고 공허한 인생이 된다.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창세라는 걸 성경은 말해준다.
궁창이 푸른색으로 보이는 것은 빛이 물에 반사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천물질문명의 상징인 낙서의 하늘인 북방에는 임자(壬子)가 있어, 혼돈과 공허가 깊음 위에 있었지만, 후천 용담도의 하늘에는 계사(癸巳)가 되어 밝은 빛이 물에 비치니 비로소 궁창이 드러났다.
천지가 드러난다는 건, 곧 세상의 기준과 질서가 바로 선다는 의미다.
천지가 둘째 날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물에 가려져서 암흑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던 것이 하늘 말씀과 땅의 말씀으로 정리를 하니 비로소 그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걸 일러준다.
오늘 날 무수한 신앙과 말씀들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윗물과 아랫물로 정리 할 날이 다가왔다.
그래야만이 비로소 셋째 날인 3에 이르러 생명체가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