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증거라도 있나요?”
“그건 … 저희들이야 기록에 의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것도 아닌 이상, 기록을 통해서 알 수밖에 없지요.”
“물론 그렇지요. 내가 묻는 것도 그런 기록에 관한 겁니다. 그런 기록을 하나만 들어보세요.”
“현무경 위탁장을 보면 36자로 된 문구가 있는데, 현무경이 성편된 1909년부터 36간 일본에 조선을 위탁한다는 내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음, 그 문구를 한 번 외워보세요. 내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의산은 잠시 운곡선생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知天下之勢者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有天下之死氣 近日日本文神武神幷務道通”
“아! 그렇군요. 내가 잠깐 기억이 안 나서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걸 증산께서 천지신명과 약속을 하고 기록으로 현무경에 남겨 놓았다는 말인가요?”
“그건 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요?”
“하하하. 물론 그랬지요. 내가 그걸 굳이 묻는 까닭은 그런 말이 과연 가슴에 와 닿느냐 하는 겁니다. 그냥 누가 말했으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 실제로 그 의미가 닿아야 합니다. 증산께서 신명들과 더불어 후천의 도수를 정하면서 개벽을 하였다는 사실이 정말로 어떤 의미인지 선명하게 각인되었느냐 하는 걸 나는 묻고 있는 겁니다. 개벽이란 것은 사실 매순간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공간이 열리는 것을 ‘개(開)‘라 하고, 시간이 열리는 것을 ’벽(闢)’이라 한다면, 매순간 순간이 바로 개벽입니다. 시간은 항상 흐르고, 공간도 항상 변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절도(節度)가 있습니다. 밤낮이 흘러야 하루라고 하는데, 그 속에는 12시간이라는 시간이 있으며, 그 시간을 보낸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곧 천지공사나 천지개벽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변화하는 큰 틀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지금 증산께서 천지신명과 약속을 하고, 그 결과를 기록한 증거물이 현무경이라는 걸 믿느냐고 묻는 것은, 그만큼 여러분의 의식 속에서 시공의 법칙을 활용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운곡선생의 설명은 어찌 보면 어린애들한테 하는 수준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주 고차원적인 것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초등학생들도 알 수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운곡선생의 입에서 거론이 되면 신기하리만치 오묘한 맛이 났다
“시공의 법칙은 매우 중대합니다. 왜냐하면 천지가 하는 일은 시공을 빚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여도 시공을 빚어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정녕 인간다울 수 있으려면 시공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천지는 부모요, 부모가 자녀인 인간들에게 해 주는 일은 바로 시공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따라서 시공을 활용하는 일이야말로 충, 효의 근본입니다. 19번이 누구죠?”
“학산입니다.”
“학산은 시간은 하늘과 땅 중에서 어느 곳을 터로 한다고 보나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