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셋째 날은 궁창 아랫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바다가 이루어지고, 땅이 드러나게 하였다. 태초에 만들었던 천지가 비로소 셋째 날에 이르러 그 형상을 나타낸다. 이것은 1 + 2 = 3이라는 기본적인 등식을 의미한다. 즉 첫날에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고, 둘째 날에 하늘다운 하늘을 만들고, 셋째 날에 땅과 바다를 만들어, 식물을 두었다. 따라서 천지가 비로소 형상다운 형상을 나타내는 것은 셋째 날이라고 할 수 있으니 첫날과 둘째 날의 완성판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흐를 때에 문으로 그걸 막은 자가 누구냐? 그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그것으로 땅 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 같이 나타나되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 바 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 욥기 38장 8절 - 15절”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界限)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여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 . - 예레미야 5장 22절”
이외에도 무수한 물에 바다와 땅에 관한 기록이 있으나,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굳이 다 소개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문구들은 모두 물질적인 땅이나 바다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서 벌어지는 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는 걸 강조하고자 한다.
위에서 인용한 두 문장도 영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것은 ‘네 교만한 물결’이라는 표현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결을 보고 교만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바다의 한계를 정했다고 하면서, 너희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여 그 한계를 넘었다고 하는 걸 보면, 단순한 바다를 가리킨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바다나 땅을 인간의 의식과 연결한 비유의 말씀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성경은 비유로 영적인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셋째 날은 3수를 가리킨다.
1과 2는 음양의 기본이지만, 3은 음양이 합하여 생명이 나오게 마련이다.
비유하면 아버지(1)과 어머니(2)가 합하여 나온 자녀를 3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일째에 비로소 생명체를 지닌 식물을 만들었다.
그런 식물들도 그냥 식물이 아니라, 반드시씨를 가진 풀과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고 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씨가 없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식물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씨는 인(因)이요, 열매는 과(果)다.
식물은 가장 기초적인 생명사슬이다.
식물은 동물이 먹고, 동물은 인간이 먹는다.
무얼 먹는다는 건, 그 먹는 대상을 지배한다는 의미다.
호랑이가 비록 힘이 세다고는 하지만, 인간처럼 모든 걸 다 먹는 건 아니다. 코끼리가 엄청난 몸집을 자랑한다고 하여도 인간처럼 모든 걸 먹지는 못한다.
무얼 먹는다는 건, 곧 기를 섭취하고, 기를 조정한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다스리라고 축복을 한 이유는, 인간이야말로 만물의 영장,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셋째 날은 인간의 의식에서 스스로 살아 갈 수 있는 기초적인 생명의 말씀이 돋아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첫날과 둘째 날에 이어 셋째 날에는 보다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의식이 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