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정도도 속으로는 약간 뜨끔하였다.
전문적으로 나선 건 아니었지만, 그도 한 때는 역술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인생을 설계하는 데에 역술이 반드시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사주를 수집하는 버릇이 생기고, 무수한 임상실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적중률이 높아지는 걸 알게 되었고, 재미도 불어났다.
그러나 무언가 허전한 마음 한 구석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으로도 풀리지 않는 것이 진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책방에서 현무경을 접하게 된 이후로는 그는 사주학을 멀리하게 되었다.
감히 그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게와 가치가 현무경에는 들어 있었던 것이다.
“사주도 물론 인간 생활에 필요해서 등장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주가 인생의 본질이나 참 자아를 찾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대개의 경우 운명의 길, 흉을 감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기 때문에 사주학을 멀리하라고 나는 감히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본래 길, 흉이란 것이 어디 있나요? 그건 전부 인간이 인위적으로 지어 놓은 의식의 틀이 아니던가요? 날씨가 항상 맑다고 해서 좋을까요? 때로는 비도 오고, 먹구름도 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내려갈 때도 있고, 올라갈 때도 있는 법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개운(開運)의 비법을 일러드릴까요? 그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좋은 씨를 심는 일’입니다. 지금 저축을 하지 않으면서 어찌 내일의 풍요를 바랄 수 있나요? 천지가 지어 놓고 가는 것은 시간과 공간뿐입니다. 시공은 결코 인간이 만드는 게 아닙니다. 천지부모가 인간이라는 자녀를 위해서 지어놓고 가는 것은 시공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시간을 함부로 허비하지 마세요.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우리는 ‘좋은 생각’을 심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걸 가리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나는 강조하고 싶군요.”
운곡선생의 말은 정도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그도 사주를 그만 두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운곡선생의 말과 같이 사주를 보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길, 흉에 매달리고 있었다.
정도는 그런 군상들이 싫었던 것이다.
어차피 자신이 겪어야할 운명이라면 당당하게 맞서야 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피흉(避兇)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특히 대재벌이나 기업가나 정치가의 배후에는 거의 유능한 역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정도는 역술에 대한 혐오감마저 느껴졌다.
정도가 믿고 있는 역학은 삶에 찌들리고, 인생의 진의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안식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진리였는데, 한낱 돈 많은 사람들의 수족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게 더 없이 싫었다.
그걸 지금 운곡선생은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지 않는가?
“증산께서 하루는 역술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에게 말하기를 ‘지금 동양의 운세가 서양에 밀려서 이렇게 하다가는 영영 서양에게 밀려 그 자취도 없이 사라질 텐데, 그대들은 나와 같이 동양을 살리는 게 어떠냐?’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감히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였지요. 증산께서는 그들을 나무라면서 쫓아버렸다고 하는 기록이 있더군요. 우리는 개인의 길, 흉에도 물론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전체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먼저 모색해야 합니다. 증산을 우리가 시천주님으로 경외하는 까닭도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이 모두 더불어 잘 사는 개벽을 단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능력만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개인적인 가정의 행복과 풍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런 길을 마다하고 오직 광제창생과 포덕천하의 길을 가셨기에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분의 가르침을 좇으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