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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원죄는 과연 성경적인가?

영부, 精山 2008. 3. 19. 09:14

원죄(原罪)는 과연 성경적인가?


기독교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모두가 죄인이라고 한다.

영적으로건, 육적으로건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죄인의 피를 이어 받았기 때문에 무조건 다 죄인이라고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한 성경의 말씀을 인용할 것도 없이, 그들은 모든 인간은 예수만 제외하고는 다 죄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원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아담의 피를 받지 않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순결하게 탄생한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주신 것을 믿는 수밖에는 없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기독교의 원죄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말이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의문이 해소되어야 한다.

첫째,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걸 만든 하나님의 잘못인가?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인데, 어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걸 몰랐을까? 만약 그런 걸 알면서도 선악과를 만들어 놓았다면 과연 자자손손 인간에게 내린 원죄가 타당할까?

둘째, 선악과는 정말 영원한 금단의 과실이었을까? 먹지 못할 걸 하나님은 무엇 하러 만들어 놓았을까?

셋째, 하나님은 과연 선악과를 먹은 대가로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했을까?

원죄라는 것이 정녕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대가로 주어진 것일까?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에덴에서 추방한 동기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면 원죄론은 허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셋째, 예수가 인류를 위해 원죄를 대속했다고 하는 속사정은 어떤 것일까?

예수의 대속론을 믿는 기독교인이 엄청나게 많은 오늘날의 현실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악랄한 죄악이 기승(騎乘)을 부리고 있지 아니한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에덴동산이나 선악과 등은 형상으로 실재했던 과거의 사건들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마음과 의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에도 무수하게 많은 인간들은 선악과를 따먹고 있다.

선악과는 율법이나 계명과 같은 초등학문이다.

십계명을 비롯해서 인간의 모든 언행을 규제하는 제약들이다.

그런 것은 사람들이 혼자서 자립하기 어려운 어릴 적에 부모님이나 선배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온 것들이다.

 누가 다 큰 사람에게 ‘이것은 먹고, 저것은 먹지 말라’ 혹은 ‘손 과 발을 깨끗이 씻어라’ 등등, 일일이 참견을 한단 말인가? 그것은 지독한 인격모독이다.

깨달음을 얻기만 하면 누구나 다 스스로 할 일, 못 할 일을 분간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지각이 있는 자'라고 한다.

지각이 없는 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자신이 하는 일이 남에게 누를 끼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데에는 이와 같은 이유가 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선악과를 만들어야 했던 건, 무지하거나 몰지각한 사람들을 계도하기 위한 불가피한 처방이었다.

국가에서도 올바른 이성과 양심의 소유자만 있다면, 굳이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

만약 법이 없다면 그나마 지금과 같은 사회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온갖 인위적인 법은 인간이 그런 것들이 필요없는 깨달음과 행동이 나올 때까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선악과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해 질때까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법을 교묘히 악용하는 사람들이 출세를 하게 마련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순진한 사람보다는 영악한 사람들이 더 세상에서 활보를 하고 다닌다.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악과를 먹고 있다고 하는 근거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인간을 선악과로 시험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말하기를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주어졌는데’ 그것을 첫 사람은 나쁜 쪽으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만약 어느 아버지가 자신을 자녀들이 얼마나 믿는지, 안 믿는지 알아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독약을 안방에 갖다 놓고 ‘이걸 먹으면 죽으니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실험을 하는 아버지도 드물거니와, 혹 꼭 그렇게 하고 싶더라도 목숨을 담보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실험’을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하물며 사랑의 화신이라고 하는 하나님이 자자손손 모든 인류를 사망과 원죄라는 굴레를 뒤집어씌우는 시험을 한다는 건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냥 엄하게 야단을 치거나, 몇 대 채찍을 휘두르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상식이거늘, 자자손손 원죄라는 굴레를 씌워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건 너무 한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