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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후천 태세와 세수의 변화

영부, 精山 2008. 3. 20. 05:51

정도는 뭔가 조금 미심쩍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천의 시두가 나온 북방의 자(子)에서 후천의 시두가 나온 건 당연한 노릇이겠지만, 선천의 세수가 나온 곳으로 후천의 태세가 나오고, 선천의 태세가 나온 곳에서 후천의 세수가 나왔다는 건 선뜻 납득이 안 되었다.

선천의 세수가 나온 곳이면, 당연히 후천에서도 세수가 나오고, 태세가 나온 곳에서 역시 후천의 태세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월산이 정도를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같은 내용의 질문을 하였다. 

 

“선천과 후천은 서로 정반대가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겠군요. 낮에 뜬 태양은 밤이 되면 달이 뜨는 서방으로 지게 마련이죠? 달과 해가 서로 임무교대를 하는 것처럼, 선후천의 임무교대도 역시 달과 태양이 서로 자리를 바꾸어서 뜨게 된 것입니다. 세수(달 : 12달의 시작)가 뜬 곳으로 태세(해 : 한 해의 시작)가 서로 자리를 바꾼 데에는 이와 같은 이치가 있는 겁니다.”

 

“그럼 시두가 나오는 북방은 왜 선, 후천의 자리를 바꾸지 않은 건가요?”

 

다시 월산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게 보이나요? 그건 아마 천간만 보아서 그럴 겁니다. 천간은 무형이기에 자리 이동이 있을 수 없지요. 그러나 땅은 물질이기 때문에 불가불 변화와 이동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2지지가 이동을 하였던 겁니다. 남방의 불을 가리키는 사(巳)가 북방으로 이동을 하여 자사합(子巳合)을 이루었으니, 물에서 불이 나오고, 불에서 물이 나오는 형국이 되었군요. 이를 가리켜 현무경 신부(申符)에서는 ‘水火金木待時以成水生於火故天下無上克之理’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개벽이란 것은 선천에서 상극으로 흐르던 모든 기운을 상생합덕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과연 그렇게 해서 정말로 세상이 개벽이 된다는 말인가요?”

 

듣기에 따라서는 운곡선생이나 현무경의 이치를 한 번에 일축(一蹴)하는 듯한, 월산의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운곡선생은 아무런 동요의 기색이 없이, 빙그레 미소를 띠면서 대답을 하였다.

 

“천지공사나 개벽을 증산이 단행했다고 하는 걸 잘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치 증산께서 하늘과 땅을 실제로 뜯어고치는 개벽을 단행한 걸로 말하더군요. 그러나 그런 건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변화하는 것은 누가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증산이 하느님이라고 하여도 자기 멋대로 천지를 뜯어고친다는 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증산께서 천지개벽이라는 전무후무한 공사를 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개벽이나 천지공사는 철저하게 ‘천지도수(天地度數)’로 하기 때문입니다. 증산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도수대로 돌고 돌아 기틀이 열리리라’고 하셨지요? 천지의 변화를 범인들이 간파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선후천의 변화를 정확히 짚어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건 성인의 범주를 넘은 원시천존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증산은 바로 그런 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원시천존이라고 하여도 스스로 자연의 변화나 철칙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그 자신도 선, 후천의 교차기인 미회(未會)라는 시간대(時間帶)에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신 겁니다. 사람들이 믿건, 안 믿건, 천지는 여름에서 가을로 개벽을 합니다. 선, 후천의 천지는 항상 그대로이지만, 그 기운이 달라집니다. 그것은 마치 여름의 뜨거운 기운에서 청량한 가을의 기운으로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형상에 익숙한 인간들의 눈에는 그런 기의 이동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증산께서 친히 육신으로 오셔서 그 상세한 소식을 전달해 준 것이 바로 현무경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운기(雲氣)법이라든가, 호흡법 등은 사실 이런 이치를 전달하기 위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천지도수를 알면 얼마든지 천지의 기운에 순응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비로소 모든 변화에 자유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걸 가리켜 우리 조상들은 승유지기(乘遊至氣)라고 했습니다. 지기를 타고 천지를 유람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