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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는 영원한 금단의 과실이 아니다

영부, 精山 2008. 3. 20. 06:58



                    선악과는 정말 영원한 금단의 과실이었을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절대로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을까? 그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에덴동산)을 다스리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 창세기 2장 16절 ~ 17절”


 각종 나무의 실과는 창세 셋째 날에 만들었던 ‘각종 씨가진 풀과 열매 맺는 나무’를 가리킨다. 물론 이때의 풀이나 나무는 모두가 맑으면서도 저급한 의식이나 깨달음을 비유한 상징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나 의식에 받아들이는 모든 것도 양식이다. 그러기에 예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욕심의 언행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갈파(喝破)하였다. 더러운 음식을 먹으면 병이 나는 것처럼, 더러운 언행은 사람의 마음과 의식을 더럽게 한다.

그러나 일일이 더럽고 깨끗한 것을 따지면서 살아간다면 그 자체가 또한 병이다. 웬만한 건 그냥 눈 감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수가 많다. 큰 낭패가 아니라면 그냥 받아 주는 게 좋다. 그래서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으라’고 했던 것이다. 사람이 하는 각종 정보나 지식, 능력은 사실 어느 것 하나 필요 없는 것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정보나 지식, 지혜 등을 갖추는 게 좋다. 마치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는 이치와도 부합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넘지 말아야 할 보루(堡壘)를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선악과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경계까지 하였다. 선악나무는 생명나무와 더불어 동산 중앙에 있게 하였다. 동산 중앙은 마음을 가리킨다. 생명나무는 글자 그대로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선악나무는 선악을 알게 한다. 생명나무는 사람을 살리는 지혜이므로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고, 선악나무는 선과 악을 분별하고, 비교하는 분별심을 가리킨다. 사탄이란 의미는 ‘대적(對敵) 함’이라고 한다. 대적한다는 것은 곧 비교하고 분별하여 나타나는 결과다. 잘, 잘못을 따지면서 일을 처리한다면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에 직면한다. 일이란 것은 잘, 잘못을 가리기 위한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어떤 일이건 그 열매가 좋아야 한다. 아무리 화려하고 보기에 아름다운 꽃을 자랑하는 나무라고 하여도, 만약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속 빈 강정이나 다름이 없다. 선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맺는 열매가 더 중요하다. 어차피 심은 대로 거두고, 뿌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철칙이다. 꽃은 튼실한 열매를 맺거나, 생명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은 아니다. 선악도 마찬가지다. 선악과는 생명과를 먹기 위한 방편으로 나온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생명과는 영혼의 열매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영원한 금단의 과실로 삼은 건 아니다. 그런 사실은 솔로몬의 경우에서 잘 나타난다. 솔로몬은 비록 다윗이 충실한 부하 장수인 우리아를 죽이면서까지 강탈한 유부녀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나온 불륜의 자식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슬기로운 지혜와 재판을 행한 예수의 조상이다. 만약 하나님이 선악이라는 잣대로 솔로몬을 바라봤다면 결코 그에게 그와 같은 영광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솔로몬이 정부인의 몸에서 나온 형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왕이 된 후, 가장 신경을 쓴 건 백성들이 억울하지 않게 선악을 재판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단을 쌓고 1천 번에 이르는 번제(燔祭)를 드리면서 ‘선악을 판단하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하나님은 그가 일신의 번영 보다는 백성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한 선악판단의 지혜를 달라는 게 맘에 든다고 하면서 부귀와 영화까지 덧붙여주는 축복을 내린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지혜와 부귀, 영화를 누렸다. 솔로몬이 추구한 건 ‘선악을 판단하는 지혜’였는데, 그건 분명 ‘선악과’다. 이처럼 첫 사람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면서 자손대대로 원죄라는 저주를 내린 반면, 솔로몬에게는 엄청난 축복을 주는 이중적인 처사를 하나님은 왜 했을까?  

 그것은 선악과 자체가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걸 먹어야 할 여건에 문제가 있다는 걸 가리킨다. 즉 첫 사람은 갓 태어난 상태이므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이며, 솔로몬은 의식이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였기에 선악과를 먹어도 아무런 탈이 없다는 걸 가리킨다. 어린애가 선악을 판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 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적어도 지각이 열린 성인이 되어야 공평무사하게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법이다. 만약 사람이 영원히 선악과를 먹지 않는다면 영원한 백치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결코 백치나 바보가 아니다. 누구보다도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나님의 형상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이 영원힌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금단의 과실로 삼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