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유지기라면 정도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환단고기 삼성기의 맨 첫 장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거기에는 사백력지천(斯白力之天)에 계시는 일신(一神)이 승유지기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운곡선생이 승유지기라고 하는 걸 들으니 자못 신기한 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도 기를 타고 노닐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것은 옛날 신선들이나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던가?
“월산님. 제 아무리 천지가 개벽된다고 하여도 인간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현무경에서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식개벽입니다. 흔히 의식개혁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만, 나는 감히 의식개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개혁은 인위적인 것이지만, 개벽은 하느님만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하는 이 공부는 자긍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여러분 안 그런가요?”
“옳습니다. 당연하지요”
사람들은 힘껏 박수를 쳤다.
“어차피 현무경 본문을 해설 할 적에 다시 상세하게 언급하기로 하겠지만, 현무경 첫 장에 ‘기유정월일일사시’라고 한 문구가 없었다면 영원히 ‘그 날’과 ‘그 때’는 밝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는 서기 1908 기유년 음력 1월(황극력 정유 정월) 1일(임오일)‘이며, 그로부터 만 80년이 지난 서기 1989 기사년 음력 3월 16일(황극력 정유 정월 1일)이 되어야 천하에 황극인이 황극인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공사를 증산은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천에서 후천으로의 개벽된 실상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사온데요?”
갑자기 궁중 언어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예에. 현산 낭자. 어인 일이시온지요?”
“선천에서 후천으로 1989 기사년에 개벽이 되었다면, 어찌하여 세상은 아직도 어수선한 건가요? 개벽은 분명 지상선경(地上仙境)을 가리키는 것일 터인데, 지금 세상이 지상선경이라고 할 수 있나요?”
“자시부터 1양이 솟는다고 하지만, 어디 자시에 밝아지는 걸 본 적이 있나요? 아무리 빨라도 인시는 되어야 사물의 윤곽이 보이지요? 지상선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는 씨에 해당하는 조선부터 황극력으로 무장이 된 지상선경이 건설되고, 다음에 전 세계로 퍼지게 마련입니다.”
황극력으로 무장이 된다고? 그러고 보니 정도의 머리에는 운곡선생이나 의산이 붓으로 일기를 치면서 생소한 달력을 사용하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지만, 계속 이어지는 운곡선생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기독교에서도 말하기를 예수가 2,000년 전에 인류의 죄를 대속하였다고 하지만, 오히려 현실은 더욱 더 많은 죄악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나 하느님이 거짓말을 했을까요? 그런 건 아닐 겁니다. 분명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했습니다. 무엇으로 했다는 말일까요? 그가 말한 진리의 말씀만 잘 깨달아도 분명 사람들은 밝은 의식으로 변하고, 밝은 세상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쉽게 비유한다면 전등을 밝힐 수 있는 시설을 예수가 해 놓았다는 말이지요. 그걸 사용하고, 안 하고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강제로 할 수는 없거든요.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거의가 비유로 되어 있기에,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문자적인 해석에만 머물러 영의 예수가 아니라, 육의 예수로 믿은 결과가 바로 오늘 날처럼 ‘말로만 대속을 하였지, 실상은 죄악이 더 번성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현산은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