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유혹한 뱀의 정체
앞의 2항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의 뜻’에서 이미 밝힌 것처럼, 뱀은 사람을 가리킨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 창세기 3장 1절”
사람들은 첫 사람을 유혹한 뱀과 그 시험에 넘어간 첫 사람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운다.
하나님은 고귀한 생명도 주시고, 자유의지도 주셨는데, 그걸 악용한 뱀과 첫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배신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뱀을 간교하게 지었기 때문에 이 모든 사단(事端)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간교하게 지었기 때문에 뱀이 간교한 행동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누가 더 근원적인 책임을 져야 할까? 그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런데 예수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마태복음 10장 16절)”고 가르친다.
이 구절을 보면 뱀은 간교함이 아니라, 지혜의 상징이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처럼 가장 간교하다는 건, 곧 가장 지혜롭다는 말이다.
본래 좋은 약일수록 독이 강하다.
따라서 뱀은 가장 간교하기도 하며, 동시에 가장 지혜로운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람이다.
선악과를 먹은 죄의 대가로 뱀은 ‘배로 기어 다니고, 평생 동안 흙을 먹으라’는 저주를 받는다.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사람들은 ‘태초에는 실제로 뱀이 걸어 다니기도 하고, 날아다니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 먹은 건, 손이요, 맛을 본 건 혀다.
따라서 굳이 저주를 내린다면 손이나 입, 혀에 내려야지 굳이 배로 기어 다니게 하였으며, 흙을 먹으라고 했을까?
또 눈이 밝아지자 부끄러워서 하체를 가려야 했을까?
하체를 가린 것은 성적인 타락을 가리킨다고 하는 신학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뱀에 관한 걸 얘기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걸 다 열거할 수는 없고, 대표적인 걸 말한다면 단연 ‘불 뱀(혹은 놋 뱀)’이다.
불 뱀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40년 간 광야생활을 할 적에 등장한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그들을 모세가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온갖 고통이 따른다.
때로는 양식이 없어서 고통이요, 때로는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이었으며, 때로는 괴질이 돌아 고통이었다.
그럴 때마자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급기야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
여호와는 그들에게 불 뱀을 보내어 물게 하였다.
불 뱀에 물린 자마다 고통에 신음하다가, 모세에게 찾아와 다시 여호와께 구원을 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모세는 그들의 행위가 미웠지만, 다시 여호와께 그들을 구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때 여호와가 말하기를 ‘나무(십자가)에 불 뱀을 잡아서 매달아라. 그걸 쳐다보는 자는 살 것이요, 안 보는 자는 죽을 것’이라고 한다(민수기 21장 4 ~ 9절). 그렇게 해서 뱀에 물린 자들은 다시 살아난다.
후에 예수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한복음 3장 16절)’고 하였다.
나무장대(십자가)에 매달린 뱀이나 예수의 몸은 같은 상징이다.
뱀이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서 죽이는 것이나, 예수의 육신을 믿어서 죽는 것이나 같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자면 ‘뱀 = 예수의 몸‘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예수를 성령으로 깨닫지 못하고, 육적으로 믿는다면 뱀에게 물린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전부 예수를 육적으로 믿고 있다.
그 증거는 예수가 육신으로 처녀 몸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무덤에서 부활한 것도 육신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뱀에게 물린 것이다.
에덴에서 뱀에게 물린 첫 사람으로 전락하여, 선악과를 먹고 있는 셈이다.
살고 싶으면 장대에 매달린 뱀을 바로 보아야 한다.
즉 살고 싶으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육신을 바로 보아야 한다.
왜 하나님은 굳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굳이 그런 고초를 겪지 않아도 능히 예수를 믿게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바로 성경의 핵심이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로 보면 영생을 얻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하릴 없이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복음이다.
그대는 보았는가?
십자가의 예수를!,
저주 받은 예수를!
그것은 반드시 죽어야 할 육신이라는 걸!
그것은 바로 당신이 죽여야 할 당신의 몸이라는 걸!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아난다는 걸!
뱀은 12띠 중에서 선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巳)다.
그러나 선천은 다 알다시피 낮에 속하기 때문에 양(陽)을 위주로 한다.
1양은 자축(子丑)이요, 2양은 인묘(寅卯)이며, 3양은 진사(辰巳)다.
3양은 양이 가장 밝은 상태이므로 선천의 왕이다.
그러나 선천은 양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같은 3양이라고 하지만, 뱀은 용의 그늘에 가려 그늘 속에 지내야 한다.
뱀을 가리켜 가장 간교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가장 밝은 3양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건, 용인 진(辰)이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3양이 뱀이기 때문이다.
간교하다는 건 그림자처럼 어두운 가운데서 지혜를 써 먹는 걸 가리킨다.
뱀은 용과 더불어 선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법이며, 당연히 다음에 오는 말(午)과 양(未)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어서 후천을 맞이해야 한다.
후천은 양이 아닌 음이 실상을 드러내기 때문에 말 보다는 양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성경에서는 그 양을 가리켜 ‘어린 양 예수’라고 하였다.
그런데 계시록에 기록된 것처럼, 용과 뱀은 합세하여 어린 아이(어린 양 예수)를 낳은 여인에게 물을 토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 계시록 12장 13절 - 17절”
이 구절은 ‘9. 물’에서 이미 소개했다.
그러나 지금 보면 다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자들은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이것은 선천의 인간이요, 후천의 인간은 반대로 여자에게서 나와야 한다.
먼저는 남자에게서 나온 자요, 나중은 여자에게서 나온 자다.
그래서 예수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가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갈라디아서에는 증거를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나오는 징조를 친히 하나님이 보여주겠다고 한 의도였다.
성경에는 뱀의 독을 받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을 바울이라고 하였다.
“사도바울이 ‘멜리데’ 섬에 조난하였을 적에 그 섬의 토인들과 함께 불을 쪼일 적에 독사가 불에서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다. 토인들은 바울이 곧 죽을 줄 알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자 바울을 신으로 숭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사도행전 28장 1절 ~ 7절).”
이때 바울은 바다에서 조난을 당하여 물에 익사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물은 앞에서 밝힌 것처럼 세상의 무리와 열국과 방언이니, 이는 곧 세상의 불법적인 말씀이다.
불 속에서 독사가 나온 것은 선천의 가장 뜨거운 곳(불)에 있던 사(巳)가 선천의 자시(子時) 시두(時頭)를 대신하여 후천의 시두로 튀어 나온다는 말이다.
선천의 의식에서 지내는 토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죽음으로 보이겠지만, 깨달음을 얻은 바울에게는 오히려 생명이 되었다.
이와 같은 비유는 성경만이 아니라, 다른 신화나 민화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무튼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을 유혹한 뱀은 물질문명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의식, 즉 선천 인간의 의식이다.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 디도서 1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