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은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 앉았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였다고 하지만 세상은 더 많은 죄악이 있는 것처럼, 증산께서 아무리 천지개벽을 하였다고 하여도 개벽의 원리와 방편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대속과 개벽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간과하면 안 됩니다.”
대속과 개벽의 차이?
대속은 인류의 죄를 대신 갚아준다는 것이고, 개벽은 천지를 새롭게 연다는 뜻이니까 분명 차이는 있을 텐데 …
하긴 정도는 애초부터 기독교의 대속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대속과 개벽의 차이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 본 일도 없었다.
내 죄를 남이 대신 갚아준다는 말부터 정도는 썩 내키지 않았다.
잘 했건, 못 했건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 떳떳한 법이지, 예수가 대신 갚아준다고 하면 자신은 영원한 빚쟁이가 아닌가?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인류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자체가 정도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이 현무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현무경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후천 5만 년의 기강과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 원시천존과 천지신명들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무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지식이나 학문의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현무경이 어려워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증산이라는 인물을 상제님, 혹은 천주님, 하나님 등,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분들도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관심이 없는 것보다는 낫겠죠. 문제는 그런 관심을 증산께서 진심으로 바라시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기성 종교와 별반 차이가 없는 또 하나의 종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증산계열에 속한 종단들의 모습을 보면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겁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기성 종교의 가르침과 현무경의 가르침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무얼까요?”
사람들은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음, 그러면 18번이 누구야?”
“접니다.”
“향산이군. 어디 대답해 보세요.”
“성경이나 불경, 도덕경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천지의 도수가 현무경에는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봅니다.”
운곡선생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정곡(正鵠)을 찔렀군. 바로 그겁니다. 증산께서 천지공사라는 전무후무한 개벽을 단행한 바탕에는 도수라는 게 있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이 잊을까봐 가끔씩 강좌 시간에 질문을 하는 겁니다. 그 어느 경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천지 도수를 증산께서는 활용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지공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가불 천지 도수에 대한 걸 먼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 여기 와서 도수라는 용어를 많이 접했을 겁니다. 내가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도(道)와 도수(度數)의 차이점을 얘기했나요?”
“네, 전에 도는 전체적인 우주의 변화를 가리키고, 도수는 그걸 이루고 있는 구체적인 실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도가 메모한 노트를 보면서 대답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