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
라는 답이 동시에 몇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렇죠. 모든 건 토를 바탕으로 해서 변화나 조화를 부립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갑과 기가 만나면 토로부터 시작한다고 하겠지요? 변화는 중앙의 토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생성의 첫 번째인 갑과 기는 토에서 만난다는 얘기입니다.”
장내는 순간 짤막하게 ‘아!’하는 탄성이 들렸다.
“사주학에도 말하기를 일간(日干)이 甲인 사람이 대운(大運)이나 세운(歲運)에 己가 들어오면 목의 성질보다는 토의 성질이 작용을 해서 신뢰를 중시하게 된다고 합니다. 乙 일간이 庚을 만나면 의로운 과단성을 중시하며, 丙 일간이 辛을 만나면 지식이나 슬기가 발동을 하고, 丁 일간이 壬을 만나면 인자한 덕성을 발휘한다고 하며, 戊 일간이 癸를 만나면 밝은 예지나 명랑한 예절을 숭상하게 된다고 하지요.”
“맞아요. 사주를 보면 저런 건 틀림이 없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걸 보면 신기한 일이죠. 그 맛에 사주학을 공부하지. 하하하”
누군가 뒤에서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그 원리를 생각해 보기로 할까요? 갑을목, 병정화, 무기토, 경신금, 임계수라는 오행으로만 생각한다면 갑기화토가 풀리기 힘들다고 하였죠? 그래서 우리는 방금 전에 ‘갑을병정무’를 선천 생오행이라 하고, ‘기경신임계’를 후천 성오행이라 하였습니다. 이때에는 ‘갑을병정무’를 각기 ‘목화토금수’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일부 선생이 발견하신 목극생토(木克生土), 화극생금(火克生金), 토극생수(土克生水), 금극생목(金克生木), 수극생화(水克生火)라는 후천 5행의 법칙이 이루어집니다.”
정도는 일부선생에 대해선 약간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가 발견했다는 후천 5행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나중에 인산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부선생은 선천의 주역을 정리하여 정역(正易)을 창시하였는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선천의 상극(수극화, 화극금, 금극목, 목극토, 토극수)은 후천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대신 ‘수극생화, 화극생금, 금극생목, 목극생토, 토극생수‘라는 상생, 상극 합덕의 5행으로 변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예전에 水 일간인 여성은 火 일간인 남성을 극한다는 식의 사주풀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도 하였다.
오히려 나에게 없는 것을 상대방으로부터 보완해서 더 나은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도 하였다.
인산은 현무경 申符에 ’水火金木 待時以成 水生於火故 天下無相克之理‘라고 한 구절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정도가 그 내용을 음미해보니 그런대로 타당성이 있는 듯 했다.
물과 불은 상극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 상보하는 관계도 맞는 말이었다.
그것은 흡사 여성과 남성을 상극으로만 보아서는 매우 곤란한 이치와도 부합하였다.
물론 여성과 남성은 그 생긴 형태나 속성을 보면 정반대 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상극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태를 위주로 하기 때문이고, 작용적인 면에서 보면 둘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걸 상극으로만 본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런 면에서 정도는 일부 선생의 견해는 탁견(卓見)이라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