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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0

영부, 精山 2008. 4. 16. 07:11

그것은 이미 몇 차례의 새벽 강좌를 통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한 적이 있으므로 정도는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정도가 그간 정리한 노트에는 ‘구약 - 천사, 신약 - 아들, 성약 - 아버지’라고 되어 있었다.

그것은 지금 시절은 아버지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는 얘기다.

천농이라면 하늘이 짓는 농사라는 말인데, 하늘이 짓는 농사는 인간의 영혼을 심고 거두는 농사라고 해야 할까?

하늘은 어떻게 영혼을 심고, 거둔단 말일까?

 

“기유정월일일사시가 기준점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나요?”

 

누군가의 질문이 있었다.

 

“그런 건 현무경의 내용을 언급할 적에 어차피 상세하게 거론할 예정입니다. 이 시간은 현무경의 형태를 위주로 공부하도록 합시다. 현무경의 앞장이 백공으로 시작했다면, 맨 뒷장도 역시 백공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정도가 현무경의 맨 뒷장을 보니 앞장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글이나 그림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앞장은 완전한 백지였지만, 뒷장은 반은 글씨가 있고, 나머지 반은 백지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앞과 뒤가 다른데요.”

 

정도가 현무경을 뒤적이면서 운곡선생을 바라보았다.

 

“그렇죠? 앞에는 완전 백지요, 뒷장은 반공 반색(半空半色)으로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모든 사물의 출발은 공수래(空手來)였지만, 마지막 공수거(空手去)는 반공반색이라는 말이 되겠군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수래공수거와는 좀 다른 차이가 있다는 걸 현무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공수래공수거는 정도가 옛날에 많이 듣던 말이었다.

가끔씩 정도는 종로에 있는 조계사에 들러 큰 스님들의 설법을 경청하곤 하였는데, 공수래공수거는 거의 단골 구호였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 앞에 서기만 하면 모든 것이 덧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운곡선생은 현무경의 공수래공수거는 불교의 그것과는 다른 차이가 있다고 하니 궁금하였다.

 

“공수래의 공을 숫자로 말한다면 0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공수거의 공은 十이라고 한다는 것이 현무경의 가르침입니다.”

 

 0과 10은 본래 같은 것이 아닌가?

정도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0과 10을 같다고 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하면 공수래공수거가 자칫 허무함이나 무상함의 상징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그게 어떻게 다른가요?”

 

정도는 입술이 타는 듯 했다.

그가 찾고자 했던 ‘참 나’나 ‘인생의 의미’가 과연, 운곡선생의 입에서 풀릴 수 있을까?

 

“0에는 일체의 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10에는 4방의 색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1, 2, 3, 4를 합하면 10이 됩니다. 하지만 0은 어떤 걸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해도 0일 따름이지요.”

 

“ … ???”

 

“현무경의 앞장에 있는 백공과 뒷장의 반공반색을 잘 살펴보세요. 백공을 이루고 있는 면(面)은 모두 몇인가요?”

“2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