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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와 까마귀

영부, 精山 2008. 4. 17. 08:44

 물이 불어서 15규빗이 올랐다고 하는 건, 선천 물질문명의 도수가 충만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15는 낙서의 도수다.

낙서의 3신은 하늘의 공간인 5방을 기준으로 하여 15도수가 성립한다.

이에 비해 후천 인존문명의 도수는 땅의 6기를 기준으로 하여 18도수가 성립한다.

15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물에 덮였다고 한 건, 낙서의 도수가 충만해지면 태산과 같은 이 세상의 영웅들도 다 그 속에 잠기게 된다는 뜻이다.

낙서의 도수가 충만해짐은 물질적인 의식이 충만해짐을 가리킨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영혼이다.

하나님이 하늘의 창을 열어 홍수를 세상에 범람하게 한 것은, 혼잡한 여러 가지 말씀으로 세상을 혼란하게 한다는 뜻이다.

본래 어떤 말씀이건 분간할 수 있는 눈만 뜬다면 취사선택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다.

‘산들아 잠잠할 지어다’는 표현이 성경에는 여러 군데에 등장하는 걸 보아도, 산이 사람, 특히 거짓 목자들을 가리킨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물이 150일을 창일하였다는 것도 1,800시간을 가리키는 셈이니 이는 곧 3,600시간의 절반이다.

즉 선, 후천 중에서 절반인 선천을 물이 채운다는 걸 상징한다.

15가 낙서 도수라는 걸 감안하면 쉽게 납득이 될 것이다.

낙서가 충만하면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어서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그 도수가 150이다.

즉 낙서는 150을 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면에 물이 빠져 마르기까지는 375일이 걸렸다.

홍수는 노아의 나이 600년 되던 해, 2월 17일에 시작을 해서 601년 2월 27일에 지면이 마를 때까지 375일 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375는 일원수 360과 하도의 중심 15를 합한 원역(原易)의 수다.

만약 실제로 홍수가 375일 간 지속했다면 방주에 있는 거대한 식구들은 양식 조달을 어떻게 했을까?

또한 반드시 수인성질병들이 창궐할 텐데 그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길이가 100미터, 폭이 16미터, 높이가 10미터 정도 되는 방주에 온갖 생물들과 그들이 먹고 375일간 먹고 살만한 양식을 비축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될까?

따라서 노아의 홍수는 영적인 깨달음에 도달하게 하기 위한 국지적인 사건이지, 결코 전 세계적인 사건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많은 새 중에서 유독 까마귀와 비둘기를 창에서 내어 보냈다고 한 것은, 그 둘이 새의 대표라는 의미다.

공중에 나는 새는 하늘의 권세를 잡은 자를 상징한다.

공중은 텅 빈 하늘, 즉 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까마귀와 비둘기는 마음의 의식에 있는 선악과와 생명과와 같은 상징이다.

성경에서 까마귀는 ‘죽은 시체가 있는 곳’을 선호하는 짐승이며, 비둘기는 ‘순결’의 상징이다.

들짐승을 먼저 내보내지 못한 것은 그들은 공중을 날지 못하고 땅에서 매어 있기 때문인데, 이는 곧 물질에 얽매인 의식을 의미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들짐승은 물질에 얽매인 인간과 그 의식을 가리키고, 하늘을 나는 새들은 물질의 경계를 어느 정도 초월한 인간과 그 의식을 가리킨다.

물이 빠지면서 산들이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40일이 지나서 까마귀를 창에서 내어 보냈다고 한 건 무슨 의미일까?

까마귀는 물이 지면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다고 한다.

또한 비둘기도 같이 창을 열고 내어 놓았다고 하였다.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질서한 말씀의 홍수가 점차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드러나는 영적인 일군들을 가리킨다.

그 영적인 지도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부류는 새들인데, 그것도 역시 음양으로 짝을 이루고 있으니 까마귀와 비둘기로 상징한다.

비둘기는 감람나무의 새 잎사귀를 물고 오지만,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는다.

감람나무는 감람유를 짜내는 나무인데, ‘기름 부음받은 자’인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즉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새 싹을 전해주는 존재는 순결의 상징인 비둘기다.

까마귀도 비둘기와 같이 홍수가 감한 여부를 남보다 먼저 알지만, 여러 사람에게 그 좋은 소식을 알려주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비둘기가 7일 만에 다시 돌아 온 것은, 새로운 7성, 즉 후천의 7정사(政事)를 의미한다.

7정사는 후천의 역법(曆法)이다.

인체로 말하자면 새로워진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이다.

7일씩 두 번 비둘기를 내 보낸 것은, 하늘의 7성, 땅의 7성을 복귀한다는 암시다.

비둘기가 두 번으로 그친 것은, 세 번 째는 인간의 7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천지를 떠나 스스로 자립하는 걸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