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남자
성경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개념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성경에서는 여성을 남성의 보조자 정도로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담을 돕기 위한 배필로 만든 것이 여자라고 하였으니 당연히 여성은 남성의 보조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급기야 여성을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으며, 그간 인류는 남존여비라는 몰상식한 문화를 만들었다.
여성과 남성에 관한 성경의 다른 구절을 찾아보기로 하면 다음과 같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 고린도전서 11장 3절 ~ 16절”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從容)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 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 디모데전서 2장 8절 ~ 15절”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 고린도전서 14장 34절”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같이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 베드로전서 3장 1절 ~ 7절”
위에서 보는 것처럼 성경은 강한 어조로 여자에 대해서는 자중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경향은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불교나 유교에서도 여성은 홀대를 하였다.
성경에서는 그 원인이 여성이 뱀에게 유혹을 먼저 받아 남성을 타락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불교나 유교에서는 여성을 남성보다 홀대한 명확한 근거나 이유를 찾기 힘들다.
그 이유나 원인이야 어떻건, 사실은 선천의 운기가 양고음저(陽高陰低)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한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을 했기에 생략하기로 하겠지만, 양이 가장 극성한 상태인 진사지간(辰巳之間)에 처한 인류가 후천의 음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상징으로 비유한 것임을 상기하기 바란다.
여자는 머리에 무언 가를 뒤집어쓰고, 남자는 쓰면 안 된다고 한 말은 무얼까?
그걸 문자대로만 본다면 이슬람의 여성들이나 천주교의 수녀나 원불교의 정녀들이 합격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남성들이라고 하여도 긴 머리를 땋아서 길에 늘어뜨리던 예전의 총각들은 불합격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으니, 그것은 머리를 길게 기른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처녀나 총각들이라는 사실이다.
결혼한 남성들은 상투를 틀고, 여성들도 긴 생머리보다는 단발머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사실은 긴 머리를 하거나, 무언가 머리를 가린다는 것은 머리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암시를 풍긴다.
머리를 드러낸다는 건, 곧 깨달음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머리는 ‘생각’을 가리킨다.
선천 종교에서 유독 여성들은 머리를 드러내지 말라고 한 것은, 그만큼 선천 세상에서는 음의 기운이 약하여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었다는 걸 방증(傍證)해주는 셈이다.
머리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삼손의 이야기다.
힘이 장사인 삼손은 머리를 깎지 않은 걸로 유명하다.
그의 힘의 원천은 머리에 있었다.
미인계에 속아 넘어가 머리를 민 후로 그의 힘은 약해졌다.
남성은 머리를 길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하나님의 말씀과는 배치되는 삼손의 경우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삼손의 경우는 하나님의 깨달음을 복중에서부터 지니고 나온 나실인(選民)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깨달음은 결코 밀거나 깎아서는 안 되지만, 세상의 깨달음으로 머리를 장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선천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순복해야 하는 게, 미덕이었지만 후천에는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안는 일이 벌어진다.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 예레미야 31장 22절”
선천에는 남자의 갈빗대로 여성을 만들었지만, 후천에는 여성이 남성을 품에 안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 결실이 바로 예수가 처녀에게서 탄생한 사실이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직이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되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 갈라디아 4장 1절 ~ 5절”
선천에는 남성에게서 여성이 나온다고 하였는데, 그걸 쉽게 말하자면 양이 음보다 우선했다는 뜻이다.
말로는 '음양‘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양음‘으로 흐른 것이 선천물질세상이었다.
그러나 후천에서는 ’음양‘이 제대로 흐르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걸 가리켜 ’처녀가 아들을 낳았다‘고 한 것이다.
처녀는 순결한 음을 가리키고, 아들도 역시 순결한 양을 가리킨다.
선천에서는 탁한 양과 음이 있었지만, 후천에는 순결한 음양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걸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에서 불결한 짐승은 두 쌍,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 방주에 모으라고 한 말씀이다.
두 쌍은 사과를 두 번 가를 적에 나타난 상하의 십자요, 일곱 쌍은 사과를 세 번 갈라서 나타난 상, 하, 전, 후, 좌, 우, 중 7군데의 십자다.
즉 두 쌍은 두 번 가른 상태요, 일곱 쌍은 세 번 가른 상태다.
두 번보다는 세 번이 더 온전한 상태이므로 정결하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