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내자와 그냥 문자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언가요? 다 같은 문자인데요.”
“물론 형상적인 면으로는 같은 문자입니다. 그러나 영부 속에 있다는 것과, 밖에 있다는 건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부는 신명들이 소통하는 의사수단이라고 하였죠? 신명들은 물론 인간과는 다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자성을 바탕으로 하게 마련입니다. 그간 천지신명은 아직 인간들이 어리기 때문에 인간의 자성을 바탕으로 삼을 수 없어서 주로 외부에서 활동을 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후천 가을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인간의 내부에 들어 있던 자성에서 거룩한 열매를 드러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건 곧 인간의 자성에서 천지인 3계의 축이 일관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즉 선천에서는 모든 중심과 가치가 유형적인 사물을 기준으로 하였기에 인간의 자성이 허상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후천에는 인간의 자성이 충실해져 천지인 3계의 신명들이 자성으로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부 속에도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를 집어넣은 겁니다. 만약 인간의 자성이 바탕을 이루지 못한다면 굳이 영부 속에 사람의 문자를 집어넣을 필요는 없었겠죠.”
운곡선생의 말을 듣고 보니, 방금 전만 해도 무슨 귀신을 내어 쫓는 부적 같아 보이던 영부가 정도의 눈에 다르게 보였다.
같은 것인데도 이처럼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다니!
아아! 마음의 눈(心眼)이 따로 있다는 말이 이를 가리킨 것인가?
“그러면 부내자는 인간의 자성 안에 자리 잡은 무언가를 상징하는 핵심이란 말인가요?”
“물론이죠. 그래서 굳이 36자로 부내자를 고정시킨 겁니다.”
36과 自性이 이런 식으로 연결이 되다니?
그러니까 현무경은 36자성으로 바탕을 삼고 출발한다는 얘기였다.
"36에 대해서 아직 납득이 안 갑니다.“
운곡선생은 정도를 잠시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해서 좋군. 물론 여기에는 36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다수일 걸로 믿지만, 모르는 분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전에 사과를 칼로 자르면서 설명을 한 적이 있지요? 굳이 사과를 자르지 않아도 다 알 걸로 믿고 그냥 말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과를 세 번 갈라서 생긴 것이 8조각이었는데, 그걸 8괘라고 부른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36이기 때문에 36과 연결된 6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운곡선생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6번 학생. 사과를 가를 적에 6수가 나오던가요?”
6번 학생이라면?
정도는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에 있던 의산이
“보긴 뭘 봐? 6번이라면 정도씨잖아?”
하는 바람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6수는 사과를 세 번 가를 적에 겉으로 나타난 상하, 전후, 좌우에 있는 여섯 개의 十자가로 알고 있습니다.”